[사설]중소기업 도산사태 놔둘건가

  • 입력 1997년 8월 10일 20시 18분


올들어 중소기업이 무더기로 쓰러지고 있다. 비교적 건실한 중소기업도 기아사태 이후 자금사정이 극도로 나빠지면서 연쇄도산의 위기에 몰려 있다. 특히 기아그룹 1만7천여 협력업체들은 긴급자금지원은 커녕 가아그룹 발행 진성어음마저 할인받지 못해 언제 도산할지 모르는 벼랑끝 상황에 서 있다. 중소기업이 자금난으로 고통을 받아 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의 자금사정은 사상 최악이다. 올들어 급격히 늘어난 부도업체수와 어음부도율이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올 상반기중 부도를 내고 쓰러진 중소기업은 7천2백33개에 이른다. 한달 평균 1천2백여개의 중소기업이 도산했다는 얘기다. 이는 작년 상반기에 비해 31%가 늘어난 것이다. 전국의 어음부도율도 0.3%에 이르러 지난 71년이래 최고치를 나타냈다. 이같은 수치는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때의 어음부도율 0.03%보다 무려 10배나 높다. 중소기업의 심각한 자금난은 전반적으로 어려워진 경제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금융기관이 돈줄을 죄고 있고 정부가 수수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들어 대기업 부도가 잇따르자 금융기관들은 기업대출을 극도로 꺼리는 대신 가계대출을 크게 늘리고 있다. 기아그룹 부도유예사태 이후에는 기아협력업체는 물론 다른 중소기업도 대출과 어음할인이 더욱 어려워졌을 뿐만아니라 기(旣)할인어음의 환매와 차입금 조기상환요구에다 대외이미지 실추에 따른 수출감소까지 겹쳐 극심한 자금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나 더 많은 중소기업이 도산할지 알 수 없다. 중소기업의 무더기 도산을 이대로 놔두어서는 안된다. 경영을 잘못해 쓰러지는 기업은 그렇다치더라도 정책의 실패와 왜곡된 금융구조때문에 지금까지 국민경제를 지탱해 온 멀쩡한 중소제조업체들이 문을 닫게 할 수는 없다. 정부와 금융기관은 부도위기에 몰려 있는 중소기업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채권은행의 기아어음 할인거부와 이를 그대로 보고만 있는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아그룹 처리문제와 관계없이 기아협력업체 및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은 한국의 자동차산업, 나아가 국민경제와 직결되어 있다. 부실기업보다 은행을 살리기 위해 부도유예기업에 대한 더 이상의 지원은 있을 수 없다는 정부의 논리는 중소기업지원과는 무관한 것이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말뿐인 신용보증기관의 특례보증 확대나 몇푼 안되는 회생특례자금 지원만으로는 연쇄도산위기의 중소기업을 살려낼 수 없다. 당장 진성어음 할인이 가능하도록 해줘야 한다. 그런다음 실효성 있는 중기(中企)지원대책을 세워 강력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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