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영정 대가 권오창 화백이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조선 단종의 얼굴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얼굴을 붓으로 되살린 이가 동강(東江) 권오창 화백(78)이다.
실은 단종 영정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지정된 국가 표준영정 104점 가운데 17점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표준영정을 가장 많이 그린 화가다.
7일부터 열리는 국립대구박물관 특별전 ‘우리 옷을 그리다: 권오창 화백 기증 복식인물화’를 앞두고, 3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화실에서 권 화백을 만났다. 초상화가인 그는 ‘복식 전문가’로도 통한다.
“이조참판인지 영의정인지, 그 신분이 시대에 따라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장식을 썼는지 알아야 영정을 그릴 수 있잖아요. 옷을 모르고는 그 사람을 그릴 수 없죠.”
그에게 전통 복식이 평생의 공부가 된 건 계기가 있다. 1990년 흑백사진 속 옷차림을 컬러로 재현한 ‘조선조 말기 복식과 초상’전을 열었다. 화집을 들고 복식 연구의 개척자인 단국대 석주선 교수(1911~1996)에게 인사를 갔는데, 석 교수의 첫마디를 지금도 기억한다.
“복식을 그림으로 그리면 좋을 텐데, 돈이 안 되니 하는 작가가 없다. 권 선생이 이렇게 작업하니 기쁘고 기대가 크다.”
이후 화백은 관련 세미나나 발표회가 열리면 어디든지 찾아갔다. 굿판까지 찾아다니며 옷의 자태를 촬영하고 스케치했다. 손상을 우려해 공개를 꺼리는 곳이 많아 도록과 연구 자료를 파고들었다. 나중에 실물을 보고 틀렸다 싶으면 그림을 폐기하고 다시 그렸다.
여기에 혼을 불어넣는 건 얼굴이다. 권 화백의 초상화 철학은 인물의 정신까지 담아내는 ‘전신사조(傳神寫照)’. 얼굴이 전해지지 않는 이는 후손 수십 명, 많게는 100명 이상을 살펴 그 집안의 골상을 연구했다. 무관인지 문관인지 예술가인지, 신분과 성정도 고려했다. 그는 “남들은 만화 그리듯 상상했다고 여기지만, 연필 초안도 한두 달이상 걸린다”며 “오랜 자료 수집과 답사, 후손들과의 대화로 얻어지는 결과물”이라고 했다.
단종 표준영정(정부표준영정 제100호)도 그렇게 나왔다. 소설 ‘단종애사’ 이래 불쌍한 소년으로 그려지던 단종을, 권 화백은 당당한 왕으로 되살렸다. 실마리는 구한말 최후의 어진화사 김은호(1892~1979)가 창덕궁에서 세조 어진을 베껴 그리며 남긴 초본이었다.
권 화백은 “(아이러니하게도) 단종 얼굴에 가장 가까운 이가 삼촌 세조”라며 “포악하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초본 속 세조는 온순하고 동그스름했다”고 했다. 여기에 태조 어진과 전주 이씨 골상을 더했고, 곤룡포는 고증에 따라 홍색으로 입혔다. 태조는 고려 관습대로 청색을 입었으나, 1444년(세종 26) 명에서 홍색 곤룡포를 받은 뒤 역대 왕들은 붉은 옷을 입었다.
권 화백은 여든을 앞두고도 붓을 놓지 않고 있다. 지금도 임진왜란 때 경북 영천에서 활약한 의병장 정대임(鄭大任·1553~1594)의 영정을 그리고 있다. 앞으로 그리고 싶은 인물도 많다. 대표적으로 단종비 정순왕후(定順王后)를 꼽았다.
“단종과 어린 나이에 헤어져 홀로 여생을 보낸 정순왕후를 꼭 그리고 싶습니다. 80세 넘게 장수하셨는데, 노년보다는 단종과 같은 시기의 모습으로 하고 싶어요. 그림에 담을 이야깃거리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번 대구박물관 특별전에선 권 화백이 평생 천착한 복식인물화들을 다수 만날 수 있다. 전통 옷차림의 어린이 69명을 한 화폭에 모은 9m 병풍 ‘백진복도(百珍服圖)’도 함께 전시된다. 9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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