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이 될 운명에 사로잡히다…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와 ‘서편제’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5월 20일 10시 12분


너무나 하고 싶은 건 어느 날 갑자기 만나게 되기도 한다. 벗어던질 수 없는 굴레처럼 운명이 정해놓은 길을 가는 이도 있다. 각자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 이들을 그린 뮤지컬 두 작품을 만나보자.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1984, 5년 영국 북부 작은 탄광촌. 파업에 돌입한 노동자들과 정부가 치열하게 대립한다. 빌리는 광부인 아빠와 형, 치매 증세가 있는 할머니와 산다. 억지로 복싱 학원에 다니던 빌리는 우연히 발레 수업에 들어가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뭔가 터져 나올 것만 같다.

발레 선생님 미세스 윌킨슨은 빌리가 춤에 놀라운 재능을 지닌 걸 알게 된다. 발레는 여자가 하는 거라 여기는 아빠의 반대에 빌리는 몰래 수업을 받는다. 최고 발레 학교인 로열 발레스쿨 입학을 위한 오디션 준비를 하는데….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김승주)가 우아한 점프를 선보인다.   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김승주)가 우아한 점프를 선보인다. 신시컴퍼니 제공

척박한 환경과 가족의 거센 반대에도 꿈을 향해 나아가는 소년의 항해를 유쾌하면서도 찡하게 그렸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사로잡힌 엘튼 존이 뮤지컬화를 제안하고 곡을 만들었다. 2005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됐고 2008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됐다. 국내에는 2010년 초연된 후 네 번째 무대다.

발레, 탭댄스 등을 깔끔하고 야무지게 선보이는 빌리는 단숨에 마음을 사로잡는다. 빌리를 응원하는 발랄한 친구 마이클 역시 그렇다. 치열한 오디션을 거쳐 60주 동안 소년들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춤추는 빌리(박지후)를 보고 아빠(최동원)가 감탄한다.  신시컴퍼니 제공
춤추는 빌리(박지후)를 보고 아빠(최동원)가 감탄한다. 신시컴퍼니 제공

좌절한 빌리가 분노하며 추는 ‘Angry Dance’는 폭발하는 에너지가 무대를 꽉 채운다. 빌리가 성인 빌리와 함께 추는 ‘Dream Ballet’는 아름답다. 그저 몰입한 현재, 알 수 없었던 미래를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보여준다. 1대 빌리였던 임선우가 성인 빌리를 맡았다. 유니버설발레단(UBC) 수석무용수가 된 그에게서 어린 빌리의 모습이 그대로 겹쳐졌다.

부딪히고 상처주지만 결국 마음이 모아지는 과정이 풍성한 볼거리와 함께 펼쳐진다. 객석 곳곳에서 까르르 터져 나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청량함을 더한다.

빌리(가운데·조윤우)가 미세스 윌킨슨(전수미·뒷줄 가운데)의 지도 아래 발레 학원 친구들과 춤추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빌리(가운데·조윤우)가 미세스 윌킨슨(전수미·뒷줄 가운데)의 지도 아래 발레 학원 친구들과 춤추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빌리 역은 김승주 박지후 김우진 조윤우가 맡았다. 미세스 윌킨슨은 최정원 전수미가 연기한다. 빌리의 아빠 역에는 조정근 최동원, 빌리의 할머니 역에는 박정자 민경옥 홍윤희가 발탁됐다. 마이클은 이서준 이루리 김효빈 지윤호가 연기한다.

7월 26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우리은행홀. 8세 이상 관람가능.

●뮤지컬 ‘서편제’

소리꾼 유봉은 딸 송화와 동호를 데리고 곳곳을 떠돌며 둘을 최고의 소리꾼으로 만들기 위해 몰아붙인다. 송화와 의붓동생 동호는 길 위의 삶과 유봉의 가혹한 다그침에 힘겨워하며 서로를 의지한다. 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동호는 이들을 떠난다. 송화가 한을 깊은 소리로 풀어내길 바란 유봉은 송화가 시력을 잃게 만든다.

뮤지컬 ‘서편제’에서 한을 삭여 깊고 절절한 소리를 하는 송화 역을 맡은 이자람.     PAGE1 제공
뮤지컬 ‘서편제’에서 한을 삭여 깊고 절절한 소리를 하는 송화 역을 맡은 이자람. PAGE1 제공


소리를 토해내는 송화 역의 차지연. PAGE1 제공
소리를 토해내는 송화 역의 차지연. PAGE1 제공

이청준의 소설 ‘서편제’를 원작으로 한 창작뮤지컬이다. 2010년 초연된 후 여섯 번째 공연이다. 윤일상이 곡을 만들고 조광화가 극본과 대사를 썼다.

소리를 향한 집념으로 폭력적 광기에 휩싸이는 유봉은 예술이 무엇인지, 예인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어디까지 감내해야 하는지 묻는다. 세상에서 외면받으면서도 소리를 놓지 않으려는 그의 몸부림은 집요하면서도 처연하다. 그런 유봉을 견뎌내며 조용히 속으로만 삼켜내는 송화. 애처롭지만 단단하다.

동호는 고통의 또 다른 이름인 가족을 잊으려 하지만 끝내 외면하지 못한다. 그리고 화해로 나아간다. 켜켜이 쌓인 한과 슬픔을 오래도록 삭여 마침내 피어나는 송화의 ‘심청가’는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숨을 멈추게 된다.

소리꾼 유봉(서범석)은 어린 송화, 동호를 데리고 곳곳을 떠돌며 소리를 찾아간다. PAGE1 제공
소리꾼 유봉(서범석)은 어린 송화, 동호를 데리고 곳곳을 떠돌며 소리를 찾아간다. PAGE1 제공

판소리와 발라드, 록, 팝이 매끄럽게 어우러져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이다. 초연부터 국악감독과 송화 역을 맡아온 이자람을 만날 수 있다. 차지연 이봄소리 시은도 송화를 번갈아가며 연기한다.

동호 역은 김준수 김경수 유현석이 맡았다. 국악계에서 단단한 입지를 구축한 김준수는 동호를 맞춤으로 연기한다. 유봉 역은 서범석 박호산 김태한이 맡았다.

한지를 겹겹이 사용해 산과 길을 수묵화처럼 펼쳐낸 무대는 서정적으로 작품을 감싼다. 단아하고 밝은 풍경은 아픔과 한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관객 중엔 부모님과 함께 온 이들이 많았다. 뜨거운 기립 박수를 연거푸 보낸 후 객석을 나서는 이들의 얼굴엔 먹먹함이 가득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에게도 관람을 추천하고 싶다.
7월 19일까지.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 초등학생 이상 관람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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