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 협상]
상법 ‘이익배분 주총 결의로’ 규정
“노조 요구, 주주 권리 빼앗는 격
삼성 선례 남기면 파급력 상당”
최승호 삼성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왼쪽)과 김형로 삼성전자 부사장이 20일 새벽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2차 사후조정을 마친 뒤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세종=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영업이익의 15%를 고정 성과급으로 달라’는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가 ‘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는 기존 자본주의 시스템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주, 채권자처럼 리스크를 지지도 않고 이익이라는 과실만 취한다는 지적이다. 재계와 학계는 국내 1위 기업 삼성전자가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하면 한국 산업계 전반의 시스템이 도미노처럼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 “노조, 책임 없는 이익만 좇아”
19일 삼성전자 노조에 따르면 노조가 회사에 요구하는 성과급 규모는 올해 영업이익의 15%다. 영업이익은 매출에서 매출원가와 임직원들에게 주는 급여 등 회사 영업활동에 필요한 각종 비용을 빼고 난 뒤 남은 이익이다. 여기서 다시 법인세, 이자비용 등 부가 비용을 뺀 나머지 재원으로 배당 등 주주환원을 한다. 노조는 영업이익 전 단계에서 이미 급여를 받아 갔지만 이후 영업이익 기준으로 추가 성과급을 달라고 하고 있다. 주주에게 돌아갈 몫을 뺏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재계에서는 삼성전자 노조처럼 근로자에게 회사의 영업이익을 달라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같은 삼성 계열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를 요구하고 있고 LG유플러스는 30%, 카카오는 13∼15%를 주장하고 있다.
학계는 최근 잇따르는 국내 기업 노조의 이 같은 요구가 상법의 기본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한다. 상법 제462조 제2항은 ‘이익 배당은 주주총회 결의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회사 이익의 처분 권한이 주주에게 있다는 뜻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는 주주가 회사 경영 실적에 따라 무한 책임을 지기 때문에 보장되는 권리”라며 “고정 급여를 받는 직원들이 주주와 동일한 단계에서 이익을 나누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날뿐더러 주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주장을 따른다면 근로자가 주주보다 더 많은 회사 이익을 챙겨 가게 된다. 현재 증권사들이 내놓은 영업이익 전망치(346조 원) 기준 15%는 약 52조 원에 달한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주주들에게 지급한 총배당액 11조1000억 원의 4배 이상이다.
● 삼성 바뀌면 韓 산업계 기준 될 것
주주는 회사 실적이 나쁘면 주가 하락으로 손실을 입고 최악의 경우 투자금을 잃을 수 있다. 채권자도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할 위험이 있다. 이 때문에 직원들도 지금보다 더 많은 보상을 원할 경우 그만큼 철저히 성과주의로 가는 게 합리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높은 보상을 자랑하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실적이 좋으면 그만큼 큰 보상이 주어지지만 실적이 꺾이면 보상이 줄고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에 한국에서 근로자는 회사에 위기가 닥쳐도 고용안정성이 높아 실직을 우려할 필요가 적고 급여도 약속한 대로 보장된다.
재계 1위 삼성전자가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발생할 파급력도 무시할 수 없다. 기존 SK하이닉스 노사가 영업이익의 10%를 10년 동안 매년 성과급 재원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한 사례가 있지만 삼성전자까지 여기에 따를 경우 반도체 업계를 넘어 한국 산업계 전반의 새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삼성전자라는 선례가 생기면 한국 산업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라며 “주주보다 근로자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발상은 단순 기업 문제를 넘어 국가 경제와 산업 전체에 큰 피해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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