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거리 명당에 ‘알박기’…선거철 또 불법 정당현수막 난립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5월 20일 20시 38분


19일 서울시 직원들이 중랑구 면목역 4거리에 내걸린 불법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9일 서울시 직원들이 중랑구 면목역 4거리에 내걸린 불법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저 현수막 저기 걸려있으면 안돼요. 어린이보호구역 표지판 보이시죠?”

19일 서울 중랑구 동원전통시장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서울시 불법현수막 기동정비반의 이태회 반장이 전봇대에 걸린 정당 현수막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린이들은 현수막에 가려 신호등을 보지 못하거나 현수막 끈에 걸려 사고를 당할 위험이 커 현행법상 어린이보호구역 내 현수막 설치는 금지돼 있다. 실제 지난달 경기 포천시에서는 초등학생이 현수막 줄에 목이 걸려 넘어지면서 두개골 골절상을 입었다.

더욱이 정당 현수막은 읍·면·동별로 2개 이내 설치해야 하는데 해당 현수막은 3개가 걸려 개수 제한도 어겼다. 결국 공무원들은 장대를 이용해 불법 현수막을 철거했다.

● 선거철 ‘알박기’, 혐오 현수막 늘어

행정안전부 집계에 따르면 전국 불법 정당 현수막 단속 건수는 2024년 5만5571건에서 지난해 10만2238건으로 1년 새 84.0% 크게 늘었다. 이에 6·3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는 4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를 ‘불법현수막 일제 정비 기간’으로 정했다. 이 기간 각 지자체는 인력을 늘려 주말까지 집중 단속을 벌이고 있다. 적발 시 과태료가 부과되고 현수막은 철거된다.

서울시도 수거보상원 639명을 투입하며 일제 단속에 나섰다. 이 반장은 “기동반 2개 팀이 하루에 자치구 6곳을 돌면 점심시간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시 기동정비반과 중랑구청의 합동 단속에서 단 1시간 만에 불법 현수막 7개가 적발됐다. 먹골역 인근에서 3개, 면목역 일대에서 4개였다. 이 가운데 2개가 정당 현수막이었다.
특히 이들 정당 현수막은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이른바 ‘명당 알박기’를 하려다 게시 규정을 어긴 사례로 의심됐다. 먹골역 인근에서 철거된 한 정당의 ‘6·3 지방선거 보수 승리 연대 촉구! 모든 보수정당 뭉치자!’ 현수막의 경우 지난달 26일까지 게시가 허용된 현수막이었다. 또 다른 현수막은 또 다른 정당이 내건 것으로 2개 이내인 개수 제한을 어기고 걸려 있었다.
이 반장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기 전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일단 정당 구호 현수막을 걸어두고 버티다가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면 후보 현수막으로 바꾸는 경우가 많다”며 “일부 소수 정당은 인력 부족 등으로 게시 기한을 챙기지 못해 넘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1~3월 전국에서 적발된 불법 정당 현수막의 69.3%(2만489개)가 설치 기간 위반 사례였다.

이번 선거에서는 혐오·허위 표현이 담긴 현수막도 중요한 단속 대상이다.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이런 정치 현수막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분기 역대 최고인 3만3045건의 불법 정치현수막이 단속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행안부는 11월 혐오·비방성 정당 현수막도 지자체 단속원들이 철거할 수 있도록 단속 지침을 마련했다.

● “지정게시대 확대 등 대안 필요”

선거철이 다가오면 현수막 게시 개수나 높이 기준을 지키지 않아 안전을 위협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행안부 주소정보혁신과 관계자는 “건널목 인근 낮은 위치에 걸린 현수막 때문에 운전자들이 뛰어오는 보행자를 보지 못하는 위험한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고 했다.

이에 정당 현수막도 일반 상업용 현수막처럼 지정 게시대에만 걸도록 하는 내용의 옥외광고물법·정당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일부 정당이 “소수 정당의 목소리가 위축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당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는 지정 게시대를 늘리거나, 정당들간에 현수막 수를 조율하도록 하면 소수정당의 현수막이 피해 보는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불법현수막#정당현수막#선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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