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행사 이벤트 하나에 뒤집히는 나라

  • 동아일보

스타벅스 503mL까지 들먹이며 마녀사냥
‘탱크 데이’와 ‘5월 18일’ 조합, 문제 있지만
의도된 것이라기보다 실수로 보여
대통령 나서지 말고 언론에 맡겨야

송평인 칼럼니스트
송평인 칼럼니스트
마녀사냥이 이제 503mL에까지 미쳤다. 탱크(tank)는 스타벅스 텀블러의 한 종류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탱크 시리즈 중에 용량이 503mL인 게 있는 모양이다. 503이란 숫자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수인번호라며 또 난리다. 스타벅스는 본래 미국 회사이고 미국에서 액체 용량을 재는 단위로 액체 온스(fluid ounce·fl oz)를 많이 쓴다. 17fl oz가 503mL에 해당한다. 구글에서 503mL를 쳐보면 샴푸 마요네즈 등 다양한 품목에서 수두룩하게 많은 상품이 검색된다.

정용진 신세계백화점 회장은 자회사인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이벤트에 대해 사과했다. 전날에는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를 해임했다.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다만 이벤트를 기획했던 젊은 사원, 젊은 팀장들은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봤다.

난 1983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교수들이 4·19 얘기를 많이 했다. 23년 전의 일이었지만 내게는 태어나기도 전이어서 까마득한 옛날얘기로 들렸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1980년은 무려 46년 전이다. 2배나 더 긴 세월이다. 그들에게 46년 전의 일을 가르칠 수 있다. 다만 그들이 그 시대에 대해 늘 적절한 감을 갖기를 기대할 순 없다.

텀블러 하면 조국 전 교수가 생각난다. 그가 검찰에 조사받으러 갈 때 텀블러를 들고 있던 모습이 개념 있게 비쳐 그 이후 나도 어느 정기 모임에서 종이컵 대신 각자 텀블러를 사용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무도 텀블러를 들고 오지 않았다. 개념들이 부족했던 것 같다. 나도 몇 번 들고 다니다가 귀찮아서 종이컵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 텀블러는 단지 커피를 원하는 온도에 마시는 용기일 뿐 아니라 자신의 표현 수단이다. 스타벅스는 다양한 디자인의 텀블러를 판다. 스타벅스가 최근 홍보하는 텀블러에 단테, 탱크, 나수 시리즈가 있다. 사원들이라고 허구한 날 하는 이벤트를 또 하고 싶었겠나. 위에서는 아이디어를 내라고 쪼니 나름대로 머리를 쥐어짜 행사 기간에 각 시리즈를 중점 홍보하는 날을 정하고 5월 15일은 ‘단테 데이’, 5월 18일은 ‘탱크 데이’, 5월 20일은 ‘나수 데이’라고 이름 지은 모양이다.

나도 스타벅스의 스몰사이즈 디카페인 커피를 애용하는 사람으로 전용 앱을 깔아두고 있다. 앱에 들어가 보니 르네상스 시대 인문학자 이름을 딴 단테 시리즈는 적당한 크기에 컬러풀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그래서 ‘한 손에 착’이다. 지금은 앱에서 사라진 탱크 시리즈는 전차 탱크가 아니라 물탱크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스테인리스 재질로 미니 물탱크처럼 묵직하게 만들어 휴대하기에는 부담스럽지만 책상 위에 놓고 마시기에 좋다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책상에 탁’이다. 나수 시리즈는 이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작아서 가방에 넣고 다니기에 편리한 크기다. 그래서 ‘가방에 쏙’이다. 그렇게 운율까지 맞춘 캐치프레이즈를 생각해 내기 위해 젊은 사원들이 얼마나 많은 궁리를 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5·18 탱크 데이’는 실제로는 탱크 데이라고 크게 쓰고 밑에 날짜를 적어넣은 것이다. 5월 16일이나 20일일 수도 있었으나 날짜 전에 정해진 순서에 따라 18일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나이 든 상사들이 꼼꼼히 살펴서 그것이 조합됐을 때 주는 ‘일베’적인 느낌을 골라냈어야 할 사안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그걸 누가 의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텀블러를 애용하는 스마트한 고객층에게 ‘일베’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구매 촉진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걸 의도했겠나.

탱크 하면 전차밖에 모르고, 문재인 청와대의 김의겸 대변인처럼 장갑차와 탱크도 구별 못 해 장갑차를 탱크라고 하고, 윤석열 계엄 날 출동한 험비차(장갑 없는 위장무늬 지휘용 차)를 장갑차로 둔갑시키더니 험비차를 세운 사람을 탱크를 세운 사람처럼 추켜세우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눈에 띄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탱크 텀블러’ 를 ‘탱크’라고 수없이 말해온 사람에게는 오히려 맹점이 된 ‘내부자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변호사 출신 대통령이라면 뉴스 보도를 보자마자 성급하게 SNS를 날릴 게 아니라 최소한 의도였을까 실수였을까 생각해봤어야 한다. 스타벅스 글로벌 본사도 사죄했지만 고의는 부정했다. 물론 의도였든 실수였든 광주는 큰 상처를 입었다. 다만 대통령이 앞장서 몰이하듯이 하면 공정한 사태 파악과 해결이 가능하겠냐는 의문이 든다. 언론에서 충분히 비판적인 첫 보도로 시작한 것이니만큼 언론에 맡겨야 한다.

#마녀사냥#스타벅스#탱크 텀블러#5·18 탱크데이#정용진#광주 민주화운동#사회적 논란#기업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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