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귀한 전령이자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는 오늘날 ‘날개 달린 쥐’ 취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나쁜 동물의 탄생’의 저자는 “동물들은 변한 적이 없다. 변덕스러운 것은 언제나 동물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라고 꼬집는다. 뒤셀도르프=AP 뉴시스
푸드덕, 날갯짓만 했을 뿐인데 비둘기에게 따가운 눈총이 쏟아진다. 한때 정보 메신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비둘기가 도심의 ‘유해 동물’로 전락한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비둘기는 고대 페르시아에선 전령으로 활약했고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적군의 이동에 관한 결정적 정보를 전달했다. 20세기 중반 미국 서민에겐 유용한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신과 휴대전화가 보급되고 공장식 닭 사육이 가능해지면서 비둘기는 설 자리를 잃었다. 높은 지능과 번식력은 되레 혐오의 명분이 됐다. 연구 결과 비둘기는 이들의 배설물을 흡입하지 않는 이상 병균을 옮기지 않는다. 산성비만큼 건물에 해롭지도 않다.
이 책은 비둘기처럼 애꿎게 혐오의 대상이 된 동물들의 편에서, 이들을 향한 인식의 변천사를 짚는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이기심 등이 동물에 ‘골칫거리’ 이미지를 덧씌웠다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세계 곳곳의 동물행동학자, 야생동물 보전활동가, 토착 원주민 등과 함께 살펴본 동물의 다층적 면모를 유쾌하고 현장감 있게 들려준다.
같은 동물도 나라에 따라 다른 취급을 받는다. 한국인은 동물 카페에서 돈을 일부러 주고 봐야 하는 귀염둥이 라쿤.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악명 높은 ‘쓰레기 판다’로 불린다. 집집마다 쓰레기통을 헤집고 다니면서 도시를 악취 나게 하기 때문이다. 토론토는 라쿤이 열지 못하는 쓰레기통을 설계하고 배포하는 데 한화로 약 315억 원을 썼지만, 이 천재 동물은 아예 쓰레기통 부수기를 택했다. 하지만 사실 라쿤은 죄가 없다. 도시화와 생태계 파괴 때문에 먹이를 찾아 서식지를 떠났을 뿐이다.
동물의 이미지는 국제 정세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도시민에게 영물인 코끼리는 가까이에서 사는 현지인에겐 ‘살아 있는 탱크’다. 인간을 포함한 다른 생물을 찢어발기고, 농부의 한철 작물을 싹 먹어 치운다. 경제 가치에 따라 사람보다 코끼리 목숨이 더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케냐에서 코끼리는 사람보다 귀하다. 코끼리가 밀렵을 당하면 현장에 서른 명이 출동하지만, 코끼리에게 사람이 다칠 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코끼리 살해 벌금은 2000만 케냐실링이지만 코끼리에 받쳐 죽은 피해자에겐 고작 500만 케냐실링이 주어진다.
이런 모순은 코끼리를 보러 오는 서구 관광객과 이들이 내는 서식 환경 보전 지원금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저자는 서구에서 오는 이런 ‘온정주의적 지원’이 결과적으로는 생태계 질서를 왜곡시키고 현지인을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해동물을 향한 막연한 두려움과 혐오는 이면의 사정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는 무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이 제시하는 해법은 우리 주변 동물들의 생태를 이해하고 알맞은 공생 방식을 찾음으로써 ‘정신적 쥐덫’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지금 방식대로 계속 사는 한 유해 동물은 늘 우리 앞을 막아설 것”이라며 ‘더불어 사는 삶’의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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