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정장에 샌들 신은 남성은 왜 상상이 안 될까

이기욱 기자 입력 2021-10-23 03:00수정 2021-10-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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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스타일의 문화사/엘리자베스 세멀핵 지음·황희경 옮김/448쪽·2만8000원·아날로그
1630년대에 그려진 영국 제1대 리치먼드 공작 제임스 스튜어트의 초상화. 그림에서 그는 힐을 신고 있다. 17세기 영국 남성 복식에서 힐은 빼놓을 수 없는 패션 아이템이자 지위의 상징이었다. 아날로그 제공
매일 집을 나서기 전 무슨 신발을 신을지 고민한다. 격식을 차릴 땐 구두를, 부담 없는 모임에 갈 땐 스니커즈를 신는 것처럼 신발마다 각각 알맞은 상황이 있다. 신발의 종류마다 다른 사회적 의미는 어떻게 형성됐을까. 캐나다 토론토 바타 신발 박물관 수석 큐레이터인 저자는 오늘날 주로 착용하는 샌들, 부츠, 하이힐, 스니커즈 등 네 종류를 중심으로 신발의 변천사와 그 속에 담긴 사회 문화적 의미를 설명한다.


샌들은 5세기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사라졌다 18세기 말 서구 패션에 등장했다. 자유분방한 히피나 검소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즐겨 신었다. 하지만 발을 드러내는 샌들을 신는 여성은 정숙하지 못하다고 여기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했다. 이에 19세기 중반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저항의 표현으로 샌들을 신었다. 이를 시작으로 점차 인식이 바뀌었고,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대관식에서 신을 정도로 샌들의 지위는 상승했다. 현대 남성들은 1984년 스포츠 샌들이 처음 등장한 후 활동성과 기능성을 강조한 샌들이 속속 나오자 본격적으로 샌들을 받아들였다. 현재도 여성은 공식 석상에서 샌들을 착용하지만, 남성은 구두를 신는다.

샌들이 여성의 전유물이었다면 부츠는 남성이 주로 향유했다. 16세기 군인은 말을 타기 위해 승마용 부츠를 신었고, 18세기 영국 시골 대지주들은 작업용 부츠를 착용했다. 부츠는 육체노동과 연계돼 남성성을 상징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부츠는 군인을 대표했다. 그러던 1960년대 ‘배트맨’의 캣우먼, ‘스타트렉’의 우후라가 부츠를 신고 등장하면서 부츠는 영웅적 여성의 상징이 돼 여성도 부츠를 신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는 어그 부츠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등 부츠는 남녀 모두가 착용하는 신발이 됐다.


하이힐은 원래 남성 신발이었다. 승마용 발걸이에 신발을 끼우기 위해 굽이 있는 신발이 필요했기 때문.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도 착용했던 힐은 18세기까지 남성을 표현하는 신발이었다. 남성용 힐이 부츠로 대체되자 힐은 여성적인 신발이 됐다. 당시 여성들은 주로 침실에서 뒤축이 없는 힐을 신었고, 남성들은 침실과 힐을 엮어 성적인 의미로 해석했다. 성적 욕망과 힐의 연결은 하이힐의 여성성을 강화했다. 이러한 인식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2015년 칸 영화제는 힐을 신지 않은 여성 참석자들을 복장이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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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모두가 즐겨 신는 신발로는 스니커즈가 있다. 19세기 서구에서는 테니스가 유행하고 농구가 고안됐다. 운동에 대한 관심은 그에 특화된 신발을 필요로 했고, 이를 충족하기 위해 스니커즈가 탄생했다. 체육관의 바닥을 보호하고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고무 밑창 신발이 필요했던 것. 스니커즈가 대중화되면서 소비자는 본인을 돋보이게 해줄 신발을 원했다. 스니커즈는 다양한 디자인을 통해 소비자를 만족시키며 운동과 패션 모두 사로잡았다.

저자는 “신발은 신은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확실하고 정확하게 말해준다”고 말한다. 신발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만으로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신발#정장#샌들#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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