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 변관식의 산수화, 진작과 위작 어떻게 가려낼까

이기욱 기자 입력 2021-07-07 03:00수정 2021-07-0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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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박물관 ‘감식안…’ 기획전
위창 오세창 서화 감식기준 토대로
근대서화-도자 진-위작 80여점 소개
“관람객들 위작구별 안목 높아질것”
소정(小亭) 변관식의 산수화 진작(위 사진)과 위작. 진작은 나무와 사람을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했지만 위작은 획일적으로 그렸다. 성균관대박물관 제공
산수화 두 작품이 있다. 산을 그린 기법과 오른쪽에 강을 배치한 구도가 유사하다. 작품 상단에 글씨를 적고 화가의 호와 인장을 찍은 방식도 동일하다. 얼핏 보면 한 사람이 그린 작품 같다. 그러나 하나는 소정(小亭) 변관식(1899∼1976)의 산수화이고 다른 하나는 위작(僞作)이다. 이 사실을 알고 다시 봐도 어느 게 진작(眞作)인지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두 그림을 하나하나 따져 보면 차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진작의 사람과 나무는 각각 다르게 표현돼 있는 반면 위작에서는 대부분 획일적이다. 작품 상단의 글씨 역시 위작에는 진작과 다르게 제작 장소와 시기가 쓰여 있지 않고 인장도 흐릿하다.

‘감식안―창조와 모방의 경계’ 기획전이 내년 3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 서화와 도자의 진작과 위작 등 80여 점을 소개해 관람객이 직접 위작을 구별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진위를 가리는 ‘감식안’을 기르는 데 한발 다가설 수 있다.

해공(海公) 신익희 휘호 위작(위 사진), 해공이 남긴 유길준의 시(아래 왼쪽 사진)와 대구의 고택인 삼가헌을 방문해 남긴 휘호. 위작은 희(熙)를 한 번에 이어 쓴 반면 진작은 획을 끊어 썼다. 성균관대박물관 제공
변관식의 산수화를 지나면 해공(海公) 신익희(1894∼1956)의 휘호 3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중에도 위작이 한 점 있다. 진작 2점과 비교해 보면 위작은 희(熙)자를 쓰는 방식이 다르고 글씨도 더 굵다. 진작을 따라하느라 붓에 힘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위를 구별할 때는 감정의 기준을 제시하는 진품인 ‘기준작’의 존재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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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전은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이 서화를 수집할 때 감정을 담당한 위창(葦滄) 오세창(1864∼1953)의 감식안에서 영감을 받아 출발했다. 위창의 서화 수집 및 정리 작업 자체가 감식의 기준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위창이 처음부터 뛰어난 감식안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조선과 중국의 서화 작품을 수집해온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다. 위창은 아버지가 수집한 작품들을 따라 쓰고(임서·臨書) 따라 그리며(임모·臨摹) 서화와 전각을 익혔다. 일본 망명 기간에는 일본 서화가들과 교류하며 견문을 넓혔다. 빼어난 작품에 대한 모방과 예술가와의 교류는 전각과 서예에 두루 높은 안목과 예술가로서 독창성을 지닌 위창만의 토대가 됐다.

귀국 이후에도 위창은 예술에 조예가 깊던 당대 문인이나 서화가와 교류하며 감식안을 길렀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 초기부터 근대에 걸친 서화가, 문인, 학자들의 인장을 모은 책 ‘근역인수(槿域印藪)’를 엮는다. 인장은 진품을 담보하는 표시로 여겨지는데, 근역인수는 인장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또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근묵(槿墨)’은 고려 말부터 근대까지 600여 년 동안 유명 인물 1136명이 남긴 글씨를 위창이 모아 만든 서첩으로, 서화 진위 판별에 좋은 기준이 된다.

기획전에서는 고려 이후의 도자도 감상할 수 있다. 고려청자는 10세기 무렵 중국의 특산물이던 도자기를 모방하면서 시작돼 11세기 후반에는 중국의 것과 동등한 수준으로 제작하게 된다. 12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고려만의 비취빛 자기를 탄생시킨다. 관람객은 고려청자가 모방의 단계에서 창작물로 변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무료.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성균관대박물관#감식안―창조와 모방의 경계#기획전#진작#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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