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데 편안한… 정면으로 마주친 4가지 아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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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무도 없는 곳’ 31일 개봉
김종관 감독 “다양한 인간상 표현”

영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소설가 창석(연우진)이 출판사에 다니는 후배 유진(윤혜리)을 만나 그의 이별 이야기를 듣는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소설가 창석(연우진)이 출판사에 다니는 후배 유진(윤혜리)을 만나 그의 이별 이야기를 듣는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단 며칠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여 한 편의 영화가 됐다. 31일 개봉하는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은 소설가 창석(연우진)이 커피숍, 박물관, 바 등에서 네 사람의 사연을 듣는 게 줄거리다. 마치 단편소설집 같은 이 영화를 연출한 김종관 감독(46)을 24일 만났다.

그가 이 작품에서 주목한 건 상실감이다. 김 감독은 “전작들과 달리 다소 어둡다. 누구나 마음의 이야기가 있지 않나. 이 영화를 보며 ‘어둠도 편안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창석이 만난 네 명의 인물은 모두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 놓여 있다. 나이 들어 과거를 잊은 미영(이지은), 인도네시아 유학생이었던 남자친구와 이별한 유진(윤혜리), 아픈 아내를 살리고 싶은 성하(김상호),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바텐더 주은(이주영)이다. 하지만 이들은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의 영화가 특별한 건 ‘특별한 기법’이 없어서다. ‘최악의 하루’(2016년)와 ‘더 테이블’(2016년)처럼 대화가 주를 이룬다. 그렇기에 배우의 연기력이 돋보인다. 관객은 누군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엿듣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김 감독은 “많은 사연을 가진 이들이 한 명의 인물에게 달려드는 만큼 액션보다 리액션이 중요한 영화”라며 “연우진의 부드러움과 섬세함이 영화를 완성시켰다”고 했다.

촬영지의 의미도 영화의 중요한 매력 포인트. 첫 장면에 나오는 카페 ‘시티커피’는 바쁜 세상의 속도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풍긴다. 창석이 드나드는 공중전화 부스는 많은 이들이 각자의 사연을 쏟아낸 곳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다. 사람이 꽉 들어찼다가 어느 순간 비워지는 바도 그렇다. 김 감독은 “사람과 사연들이 머물다 가는 곳일수록 타인의 온기나 자취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며 제목에 담긴 의미를 설명했다.

그의 영화는 숨어 있지만 분명 존재하는 사적인 이야기들을 끌어낸다. 이 영화는 네 명의 삶을 다뤘지만, 사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삶을 말하고 있다. 최근 범죄 드라마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도 “다양한 인간상을 표현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김 감독은 “제 작품이 인간에 대한 시선을 넓혀주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아무도 없는 곳#김종관 감독#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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