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유명 작가는 펜만 잡으면 글이 술술? 천만의 말씀!

김태언 기자 입력 2021-02-20 03:00수정 2021-02-20 04:2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작가의 마감/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안은미 옮김/298쪽·1만5000원·정은문고
글을 술술 써낼 것만 같은 유명 작가들도 마감을 앞두곤 골머리를 썩는다. ‘일본 단편소설의 아버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왼쪽)는 글쓰기를 천벌이라고 표현했다. 소설 ‘인간실격’의 저자 다자이 오사무(가운데)는 “아니야”를 외치며 원고를 찢고, 요코미쓰 리이치(오른쪽)는 정신없이 곳곳을 돌아다닌다. 정은문고 제공

“쓸 수 없는 날에는 아무리 해도 글이 써지지 않는다. 나는 집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화장실 안이다. 아니, 볼일도 없는데 여긴 뭐 하러 들어왔지.”

유명 작가들은 펜만 들면 글이 술술 풀리는 줄 알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마감 시간을 목전에 놓고도 쓰지 못하는 괴로움에 사무친다. 생전 40편이 넘는 작품을 쓴 일본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 요코미쓰 리이치(1898∼1947)도 마감 압박에 시달렸다. 그런데 이런 애타는 감정이 담긴 한 편 한 편 역시 또 하나의 명문이다. 이 책은 글 잘 쓰기로 유명한 일본 저명 작가들의 ‘마감 분투기’를 모았다.

“이건 아니야. 저것도 아니야”라며 원고지를 벅벅 찢는 주인공은 다자이 오사무(1909∼1948). 이 책의 첫 장을 여는 그는 소설 ‘사양’과 ‘인간실격’의 저자다. 다자이는 1940년 미야코신문에 연재한 글에서 10장짜리 원고를 쓰느라 나흘 동안 끙끙댄 자신을 그렸다. 결국 술집으로 향한 그는 대작가의 차분함을 흉내 내며 조용히 술을 마시는가 싶더니 취기가 올라 형편없이 망가진다.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소설 ‘낡은 집의 춘추’로 최고 권위 문학상인 나오키상을 수상한 우메자키 하루오(1915∼1965)는 잡지 ‘신조’ 신년호 마감에 시달리던 어느 날 독감으로 앓아누웠다. 원고 독촉 전화를 건 편집자에게 열이 38.5도나 된다고 했건만 편집자는 꾀병을 의심한다. 이튿날 열이 37.2도로 내려갔는데 마침 편집자가 사나운 발소리를 내며 작가를 찾아왔다. 우메자키는 “체온이 38.7도나 된다”며 가냘픈 목소리를 짜내 마감 독촉을 면했다. 작가는 “사실대로 말하면 당장 일어나 글을 강요할 게 뻔했다”며 그날을 회상한다.

주요기사
일본의 대문호로 꼽히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마저 “글쓰기라는 천벌을 받은 것 같다”며 고통을 토로한다. 마키노 신이치(1896∼1939)는 도무지 써지지 않아 냉수욕을 하고 홧술을 들이켠다. 애초 마감을 지킬 마음이 없거나, 자기혐오에 빠지는 등 작가들의 인품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들을 바라보는 편집자도 괴로운 건 매한가지. 원고를 기다리는 편집자는 애간장이 녹는다. 아쿠타가와의 친구 무로 사이세이의 글을 보면 작가와 편집자의 씨름은 실로 살벌하다. 아쿠타가와는 여느 작가들과는 달리 “도저히 쓸 수 없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편집자도 물러서지 않는다. “원래 당신 소설은 짧으니 두 장이라도 괜찮은 소설이 된다”고 설득했다. 한참의 입씨름 끝에 다음 호에는 글을 쓰겠다는 확약을 받고서야 편집자는 자리를 떴다.

작가와 편집자의 치열한 샅바싸움의 결실이 바로 우리 주변의 책들이다. 대문호로 평가받는 작가들이 마감을 앞두고 벌이는 기발하고 엉뚱한 모습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마도 우리 역시 저마다의 마감에 쫓기며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직장인, 주부, 프리랜서, 아르바이트 등 모든 직역에는 각자의 마감 시간이 있다. 그래서 이런 책은 모두에게 위안이 된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작가#마감#책의 향기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