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에 묘 세운 경주 ‘바둑 공주’ 고분과 신라 풍수[안영배의 도시와 풍수]

경주=안영배 논설위원 입력 2020-12-20 09:00수정 2020-12-2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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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공주는 왜 땅 속이 아닌 땅 위에서 잠들어 있을까
- 신라 마립간(왕)들은 왜 머리를 동쪽에 두었나
- 도교 선약(仙藥)인 운모가 묘에 부장된 까닭은?


최근 신라 여성 왕족의 무덤에서 200여 점의 바둑돌이 발굴돼 ‘바둑 두는 공주’로 유명해진 경주시 쪽샘지구 44호 고분. 1500여 년 동안 도굴되지 않은 채 온전하게 보존된 이 고분은 신라의 독특한 풍수 문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만리장성 이남의 중국 최상위층(왕족과 귀족) 고분들과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데다, 풍수에 대한 고정 관념까지 허물어뜨리기 때문이다.

신라 공주를 만나보기 위해 경주를 찾았다. 돔식 지붕에 둘러싸인 쪽샘지구 44호 고분은 경주시내 황남대총, 천마총 등이 있는 대릉원 동쪽 편에 바짝 붙어 자리 잡고 있다. 2007년 예비조사를 시작해 2014년부터 본격 발굴에 들어간 이곳은 국내 단일고분으로는 최장기간 조사해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원형을 복원하고 있는 공간이다. 지금도 현지에서는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경주 쪽샘지구 44호 고분 발굴 현장. 돔형 지붕 아래에서 현재도 발굴작업이 진행중이다.


5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고분의 주인공은 150cm 남짓한 키에 10대 나이의 여성 왕족으로 추정된다. 현장에서는 유골만 보이지 않을 뿐 공주가 누워 있던 흔적이 확연하게 눈에 띄었다. 머리 부위에는 출(出)자 모양의 자그마한 금동관이 있었고, 양쪽 귀 부위에는 금귀걸이, 팔과 손에는 금은으로 만든 팔찌와 반지, 허리로는 은허리띠 장식이 원형 그대로 발굴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심현철 연구원은 “신라 최상위층 무덤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이 이 고분에서도 대량 발굴되고 있다”며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밝혀주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기사
○ 땅속이 아닌 지상에다 묘를 만들어

평지에 안치된 신라 공주의 유해 (가운데)와 유물을 통해 복원한 모습. 사진 제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공주 고분은 풍수적 시각에서 보아도 중국식 풍수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우선 공주의 유해는 땅속이 아닌 지표면(지상)에 누워 있는 특이한 구조다. 만리장성 이남의 중국 한족(漢族) 무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한족계 무덤은 거의 대부분 땅을 파서 매장한 형태다.

공주의 무덤 구조 또한 만리장성 이북의 북방문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적석분(돌무지 무덤) 형식이다. 유해를 목곽(木槨·덧널)으로 감싼 뒤 그 주변을 돌들을 쌓아 얹혀 놓았고, 다시 그 위를 흙으로 덮어 둥그렇게 봉분을 만드는 적석목곽묘(돌무지덧널무덤)인 것이다.

역사학계에서는 신라왕이 마립간으로 불리던 초기 신라 시기(356~514년)에 이런 무덤이 집중적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금관총, 서봉총, 황남대총, 천마총 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적석목곽묘들이다. 특히 천마(天馬) 그림으로 유명한 천마총은 관람객들이 직접 무덤 내부를 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복원된 천마총 고분의 주인공(소지왕 혹은 지증왕으로 추정)도 공주 고분처럼 평지에 누워 있는 모습이다. ‘천마총발굴조사보고서’는 “지상에 관을 놓은 평지 묘라는 점으로 보면 지맥(地脈)에 의한 지덕(地德)을 받고자 하는 생각은 적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적고 있다.

땅속으로 흐르는 지맥을 통해 땅기운의 혜택을 누린다는 사상은 중국식 풍수의 기본 개념이자 지금도 다수 풍수인들 사이에 금과옥조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평지에 조성된 무덤을 보고 초기 신라 때는 풍수 개념이 없었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평지에 안치된 신라 공주의 유해 (가운데)와 유물을 통해 복원한 모습. 사진 제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그러나 이는 오해다. 신라는 건국 초기부터 풍수 설화가 등장한다. ‘삼국유사’는 지리술에 밝은 탈해가 토함산 정상에 올라갔다가 초승달 모양의 땅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집으로 차지했다고 전한다. 탈해가 지목한 터가 현재 경주의 왕성인 월성(月城)이다. 또 탈해왕은 죽어서 소천구(疏川丘)에 장사 지내게 됐는데 신령으로 나타나 “내 뼈를 조심해서 묻어라”라고 명령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는 신라가 건국 초기부터 풍수적 관념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무덤에서 나오는 기운을 살펴보아도 신라인들이 풍수 문화에 깊게 젖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7대 내물 마립간에서 22대 지증 마립간 시기에 조성된 공주 고분은 지금도 강한 기운이 뻗쳐 나오고 있다. 그 핵심 지점이 바로 공주가 누워 있는 곳이다. 천마총이나 황남대총에서 느낄 수 있는 천기형(天氣形·공중에서 기운이 하강하는 형태) 같은 기운을 공주가 누워 있던 자리에서 체험할 수 있다.

이로 보면 하늘 숭배 사상이 깊었던 신라인들은 무엇보다도 하늘 기운을 중요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죽어서도 하늘 기운이 하강하는 지표면에 유해를 안치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전통은 23대 법흥왕 이후 중국 문화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변화가 일어난다. 무덤 구조에서도 땅기운을 중시하는 중국식 묘제(墓制)로 점차 바뀌게 된 것이다.

천마총 내부에 복원된 주인공의 평지묘.




○ ‘신성한’ 동쪽을 향해 눕다


공주 고분과 같은 적석목곽분인 천마총.


마립간 시대의 신라인들이 하늘 기운을 중요시했다는 또 다른 ‘증거’도 있다. 공주의 머리가 향하는 방위다. 공주는 동두서족(東頭西足·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서쪽으로 발을 둠)으로 누워 있는데, 이는 천마총 같은 다른 적석목곽묘의 두향(頭向) 배치와도 같다.

동쪽은 해가 떠오르는 곳이다. 한반도 동쪽 끝에 위치한 경주의 사람들은 사후에도 머리를 동쪽으로 두어 태양의 신성한 하늘 기운(빛)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던 것 같다. 경주의 왕성인 월성과 첨성대 등 주요 유적들이 매년 태양의 힘이 세지기 시작하는 동지(낮의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점) 때 해가 떠오르는 방위선인 동지일출선(冬至日出線)에 위치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주의 주산이자 ‘신유림(神遊林·신이 노니는 숲)’이라 불리는 낭산도 동지일출선 상에 있기 때문에 신성한 산으로 받들어졌을 것이다.

사실 중국에서 태동된 풍수이론은 초기만 해도 하늘 기운과 땅기운을 같이 중시했다. 풍수의 본디 말이 ‘감여(堪輿)’인데 ‘감’은 하늘의 도(道)를, ‘여’는 땅의 도를 가리킨다. 초기 감여학(풍수학)은 굳이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땅보다는 하늘 기운을 기준으로 삼았다. 즉 하늘 기운이 하강하는 곳을 기본으로 삼아 땅의 지형지세를 살펴 풍수적 배치를 설계했던 것이다. 바로 그 점을 실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공주 묘 같은 신라 고분이다.

○ 불로장생의 선약 운모


공주 고분에서는 운모도 발견됐다. 공주의 머리와 가슴 사이에서 발견된 50여 점의 운모는 도교와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운모는 장기간 복용하면 불로장생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도교에서는 선약(仙藥)이라고 부른다.

운모는 손톱으로 긁어내면 마치 물고기 비늘처럼 일어난다고 해서 ‘돌비늘’로 불리는 광물질이다. 중국 의학서인 ‘신농본초경’에는 사악한 기운을 제거하고 오장(五臟)을 안정케 하는 효과가 있다고 소개돼 있다. 이런 운모는 공주 고분 외에 신라의 여러 고분에서도 발견되고 있고, 한성백제 시기의 고분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운모는 풍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운모는 ‘도교 풍수’에서 비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비보(裨補·풍수적 결함을 인위적으로 보완) 물질 중 하나다. 운모가 건강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오는 유해한 기운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도 운모 같은 광물질을 살기 차단용 비보 풍수로 활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 역시 비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한국 고유의 풍수 문화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경주 쪽샘지구 공주 고분은 신라 풍수의 특징적인 모습을 포괄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공주 고분을 비롯해 경주 시내 평지에 조성된 고분들은 땅기운 위주의 중국 풍수 시각으로는 해석하기가 어렵다. 경주 고분들은 신라 고유의 천문풍수 문화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수도 한양이 하늘의 중심인 3원(자미원, 태미원, 천시원)의 별자리를 본뜬 도시라면, 신라의 수도 경주는 하늘의 기운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는 또 다른 천문도시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런 하늘 기운을 통해서 경주는 1000년 남짓 수도의 지위를 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경주=안영배 논설위원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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