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불패-사교육 왕국… 버그가 된 강남의 ‘웃픈 속살’

김민 기자 입력 2020-08-01 03:00수정 2020-08-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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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출신 건축-미술가들의 이색 협업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전
강남 8학군 교육 시스템에서 일종의 버그처럼 등장했다고 자처하는 그룹 ‘강남버그’(왼쪽부터 이경택 박재영 김나연 이정우).
‘그렇게 해도 안 떨어질 겁니다.’ ‘강남 부동산 불패!’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논쟁의 정점엔 서울 강남이 있다. 온갖 정쟁 속에서도 모두가 궁금한 것은 오직 하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강남 부동산 가치의 향방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팀 ‘강남버그’는 제3의 방향에서 강남을 분석한다. 건축가와 미술가, 기획자가 협업한 이 그룹은 그 결과물을 지난달 24일 개막한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전에 선보이고 있다. 강남의 속살이 드러난 이곳에서 강남버그는 이렇게 묻는다.

‘정책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집값보다 더 근본적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 ‘사교육 1번지’의 천태만상
버스를 타고 강남을 투어하는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 ‘강남버스’. 화려한 겉모습 안에 숨겨진 강남의 ‘웃픈’ 속살을 ‘투어 가이드’를 자처한 배우, 노래강사, 워킹맘 등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영상 설치작품 ‘강남버스’는 반포 둔치를 시작으로 압구정동 대치동 구룡마을을 돌아 강남역에 도착한다. 배우 노래강사 워킹맘 등 가이드가 이야기를 들려준다. 분홍색 가이드북은 ‘강남어’를 소개한다. 화려한 겉모습 속 학벌사회의 민낯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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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테(레벨테스트) 돼지엄마(학원과 팀 수업을 결정하는 엄마) 참새아빠(부인, 자녀를 대치동에 유학 보낸 아빠) 과떠리 외떠리 민떠리(과학고, 외고, 민사고에 떨어져 일반고 다니는 학생)….’

이런 관점의 배경에는 강남버그의 실제 경험이 있다. 멤버인 이정우 박재영(미술가) 김나연(기획자) 이경택(건축가)은 모두 ‘강남8학군’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스스로가 ‘강남의 버그(벌레)’라는 우스갯소리로 출발했다.

“대기업 취직을 통해 사회 주류가 되길 바랐던 부모의 기대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강남의 교육 시스템이 전혀 다른 결과 값을 낳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버그라는 생각이 들었다.”(이경택)

버그들의 자조 섞인 냉소는 ‘천하제일뎃생대회’로 이어졌다. 사전 신청자들이 국립현대미술관 로비에서 주어진 시간에 석고상을 그리는 참여 이벤트였다. 행사의 이면엔 ‘대학에 가고 나니 아무 쓸모가 없던 입시교육’에 대한 풍자가 깔려 있다.

“대치동에서 선릉역 일대 미술학원 거리는 홍대 입구와 함께 198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미대 입시를 담당했다. 그때는 석고 소묘가 필수였는데 대학에 가니 ‘이제 석고 소묘는 잊어라’고 했다. 그 뒤 입시에서 석고 소묘가 사라지는 걸 지켜봤다.”(박재영)

당시 미술교육이 예술의 본질보다는 ‘대학에 들어가는 기술’에 치중했다는 이야기다. 강남의 ‘상징’인 사교육도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지 따져 묻는다. 이때 ‘강남버스’에서는 연극배우가 가이드로 나선다. 잠실에 살지만 ‘뺑뺑이’로 압구정동 현대고를 졸업했다는 그는 말한다. “현대고 출신이라면 다들 제가 여유롭다고 착각해요. 그런데 저도 가끔 그걸 우쭐해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죠. 내가 지금 강남 출신을 연기하고 있나?”

○ 깨어나지 못한 ‘마취 강남’
‘강남버스’ 뒤편엔 건축 도면이 둘러싼 공간이 펼쳐진다. 도시건축의 시선에서 강남을 바라보는 설치작품 ‘마취 강남’이다. 강남 쏠림을 억제한다고 하는 부동산 정책이 강남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듯 강남은 이미 정책들에 ‘무감각해졌다’고 진단한다. 이렇게 ‘깨어나지 못한 도시’ 강남을 의학용어로 해석한다.

1972년 서울 도심 고등학교의 강남 이전 발표와 이를 전후로 한 인구 분산 정책은 ‘이식(移植)’이라고 본다. 은마아파트의 재개발 움직임에 자극받은 ‘우성-선경-미도 아파트’(우선미) 조합은 ‘유착’이다. 1980년대 강남의 유일한 대형 호텔이던 르네상스호텔의 철거는 ‘절제’다. 이런 끊임없는 증상과 시술의 후유증으로 등장한 것이 구룡마을이다. 전시장 벽면에는 없어졌거나 실현되지 못한 강남의 건축물 도면이 걸려 있다.

단기적 시야에 국한된 개발, 맹목적 사교육, 그 가운데 밀려난 인간적 가치와 본질을 이들은 결국 버그라고 본다. 버그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오류를 파악할 수 있는 시그널이라는 것이다. 버그의 수정에 미래가 있다고 강남버그는 제안한다.

“권력이나 힘에 의해 억지로 개발된 지역, 유흥과 부동산의 도시. 이런 과거 이야기보다 현재의 강남을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하고 싶다. 강남은 그 지역만이 아닌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전시는 9월 30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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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강남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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