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괴짜들의 독특한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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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짐 홀트 지음·노태복 옮김/508쪽·2만7000원·소소의책

1940년대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소에서 나란히 재직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오른쪽)과 수학자 괴델. 둘은 ‘세계는 사람의 인식과 무관하게 합리적으로 조직되어 있지만 결국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동아일보DB
1940년대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소에서 나란히 재직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오른쪽)과 수학자 괴델. 둘은 ‘세계는 사람의 인식과 무관하게 합리적으로 조직되어 있지만 결국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동아일보DB
이 책은 과학책일까. 저자가 다루는 ‘과학’은 양자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이다. 천체물리학 중에서도 관측 데이터보다는 우주의 시작과 끝, 크기 같은 문제에 한정한다. 일반인이 흔히 ‘과학’으로 느끼지 않는 수학이 추가되고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같은 철학적 문제들이 바탕에 놓인다. 말하자면 ‘순수하게 추상적인 사고(思考)실험’과 관련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한편 이 책처럼 저자가 자신의 의도를 잘 설명한 책도 드물다. 서문에서 저자는 ‘칵테일파티용 잡담’이 목표라고 말한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소수와 리만 제타 추측, 프랙털, 종형곡선 등 쉽지 않은 개념을 냅킨에 연필로 휘갈긴 것처럼 상쾌하게 전달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해당 분야의 교양도서는 숱하게 나와 있지만 여전히 일반인에게는 거리감이 드는 주제들이다.

그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사람의 냄새들이 동원된다. 제목은 1940년대,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소로 함께 가는 후줄근한 두 사람을 겨냥한다. 자신보다 10년 뒤 망명 과학자 대열에 합류한 수학자이자 ‘불완전성 정리’를 내놓은 천재 괴델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내가 연구실에 나오는 이유는 괴델과 함께 걷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공통된 관심사는 ‘시간’이었다. 약속시간과 같은 일상의 시간이 아니라 상대적이고 뒤틀어질 수 있는, 일상과 무관한 시간이다.

과학계는 늘 이들 같은 ‘괴짜(nerd)’로 가득하다. 일상과 관계없는 관념에 사로잡혀 침식을 잊은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순수한 사고실험들은 실제 세상을 바꿔 왔다. 원자로와 원자폭탄, 세계를 지배하는 컴퓨터와 가상현실, 일기예보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현대는 없다. 그러나 이들 각각의 삶이 환희로 가득 차지는 않았다.

괴델은 대표적인 괴짜였다. 유령을 믿었고 냉장고의 냉매에 독이 있다고 두려워했으며 신문에 실린 맥아더 사진을 보고 ‘가케무샤(影武士·대역)’라고 확신했다. 그 외에 북베트남 정글 속에서 순수수학을 강의한 수학자 그로텐디키, 아버지 바이런경의 방탕한 삶을 속죄하며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 프로그래밍의 원조 에이다 러브레이스,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깨물고 세상을 등진 인공지능의 아버지 튜링 등이 살짝 지루하다 싶을 때마다 페이지를 넘길 힘을 보탠다.

괴짜들의 삶을 소개하는 것이 책의 진면목은 아니다. ‘방금 여기 일어난 일로 우주 반대편에 있는 뭔가가 동시에 바뀐다’는 비국소성(非局所性)이론, 우리가 아는 물리법칙대로의 우주는 ‘이를 인식하는 우리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인류 원리, 우리가 거울을 볼 때 왜 ‘앞뒤’가 아니라 ‘왼쪽 오른쪽’이 뒤집혔다고 보는지 생각하게 하는 ‘거울 전쟁’ 장(章) 등은 그 자체로 신비로울 뿐 아니라 독자의 사고 실험을 독려하는 두뇌 체조의 마당을 마련해준다.

저자는 인터뷰 모음집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로 주목받은 과학 작가 겸 철학자로 뉴욕타임스, 뉴요커 등에 기고하고 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짐 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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