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나를 찾아서]바람의 길, 카멜로드… ‘피노누아’ 영그는 그 길을 따라 꿈을 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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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FBC 몬테레이-카멜 시티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을 나와 2시간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면 남쪽 태평양과 쉽게 맞닿을 수 있다. 깨끗함을 넘어 청명함을 느끼게 해주는 하늘과 바다, 그리고 귓가를 멍멍하게 하는 파도 소리가 ‘더할 나위 없는’ 조화를 보여주는 이곳, 바로 몬테레이 반도에 위치하고 있는 항구도시 카멜 시티이다. ‘항구 도시’라 하면 우리의 기억 속에는 코끝을 찌릿하게 하는 비릿한 내음과 생동감 넘치는 어시장이 생각날 테지만, 카멜 시티는 ‘항구 도시’라 부르기에는 마을에 가깝다고 할 것이 아마도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 마을 하나하나를 수놓은 듯한 아기자기한 건물들, 그리고 유유자적하며 시간을 벗삼아 미소 짓는 주민들의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몬테레이는 지형적 특성으로 바람과 안개가 생기는 지역이다. 밤사이 안개가 머물다가 점심부터 태평양으로부터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 그 안개를 걷어간다. 필자는 몬테레이에 도착했던 그날 저녁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카멜 시티에서 해안가 쪽으로 만들어진 17mile-Drive를 따라 가보면 오랜 시간 파도와 바람이 만들어낸 절경을 따라 총 21곳에 이르는 뷰 포인트를 방문하였다. 경치는 물론이거니와 바위를 때리며 하나둘 퍼져나가는 웅장한 파도 소리에 설레지 않을 수 없다. 아는지 모르는지 해변을 마주하는 마을은 마치 모래사장을 액자 삼아 해변을 하나의 미술품 대하듯 고요히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카멜로드 파노라마 빈야드

카멜 시티로부터 15분 거리를 차량으로 이동하다 보면 낮고 넓게 퍼진 산지를 만나볼 수 있다. 눈앞에 작은 능선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산지를 이루고 있어 언뜻 보면 귀여울 듯하지만, 발을 땅에 내딛는 순간, 내가 몬테레이에 서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머리와 몸을 흔들어대는 바람은 카멜로드 파노라마 빈야드의 또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카멜로드 파노라마 빈야드는 눈을 의심할 정도로 그림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곳 포도밭의 아침 안개가 걷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이르다. 오전 8시를 넘어가면서 떠오르는 태양과 그 햇살 아래 안개를 걷어내며 드러내는 포도밭이 장관을 이룬다. 특히, 안개 속에 영글어가는 포도 열매들이 빛을 받는 모습을 보노라면 한없이 신비롭기만 하다. 혹자가 말한 ‘심은 대로 거둔다’는 믿음을 가질 법도 했다.

피노누아 스토리

작황이 좋지 않았던 그 첫해, 수심에 가득 찬 와인 양조가는 그날도 어김없이 선선한 아침을 대비해 여벌 옷을 챙겨 나와 지금의 몬테레이의 바람을 맞고 있었을 것이다. 저 멀리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있어 눈을 드니 햇살에 가리워 잘 보이지 않는다. 한 여인이 포도밭 사이로 사뿐사뿐 걸어오며 그를 부른다. 그 모습을 보며 양조가는 문득 이곳의 바람과 안개가 피노누아의 좋은 산도와 부드러운 탄닌을 제대로 만들어주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음을 알았던 것 아닐까.

피노누아, 와인 양조가도 까다로워하는 포도품종이 있으니 피노누아가 그중 하나라고 한다. 껍질이 얇아 상대적으로 껍질이 굵은 카베르네 소비뇽과 샤르도네보다 재배와 양조가 어려워 손이 많이 가는 품종이다. 그 때문일까, 피노누아는 섬세하고, 부드러우며 복합적인 향을 가진 고급 와인을 만들어 낸다. 흔히 피노누아를 ‘여성’에 비유하는 이유도 이러한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카멜로드 피노누아

그 섬세함과 부드러움 때문에 ‘와인의 여왕’이라 불리는 피노누아, 특히 카멜로드 피노누아는 몬테레이의 바람과 안개가 만들어낸 우아하고 발랄한 여성을 닮은 와인이다. 붉고 투명한 루비빛은 매혹적인 여인의 눈빛을 느끼게 하지만, 과일 향과 화사한 꽃 내음이 어우러진 약간의 탄닌감이 어느새 상큼발랄할 여인의 발걸음을 생각나게 한다.

작고 아담한 카멜 시티의 분위기는 여유와 낭만 그리고 설렘을 담고 있었다. 카멜 해변의 절경은 숨을 고르듯 섬세함을 담은 화폭을 보는 듯하다. 몬테레이의 바람에 실려 피노누아는 하루하루 영글어 갔다. 카멜로부터 불어왔던 바람의 길, 우리는 피노누아 한잔에 그 길을 따라 꿈을 꾼다. ‘카멜로 가는 길’(Carmel Road) 말이다.

김민식 기자 mskim@donga.com
#카멜로드#피노누아#몬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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