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정리 강박에서 벗어나라… 늘어놓는 게 본래 습성

  • 동아일보

◇나는 어지르고 살기로 했다/제니퍼 매카트니 지음·김지혜 옮김/184쪽·1만2000원·동아일보사

“내 가족과 친구들은 12억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영향으로 집안 정리를 시도했다가 모두 실패했다. 이런 정리는 말도 안 되는 강박관념으로 인한 후회만 남긴다.”

주로 일본 저자들이 쓴 공간 정리 주제의 신간이 대동소이한 ‘버리고 비우기’를 설파하는 상황에서 이 책의 주장은 신선한 느낌을 준다. 지은이는 미국 시사월간지 ‘애틀랜틱’ 등에 기고해 온 캐나다 출신의 소규모 출판사 편집자다.

옳다 그르다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겠지만 공간 정리에 관한 이야기도 때에 따라 유행을 탄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복잡다단한 사건사고가 귀와 눈을 어지럽히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겠지만 무조건 ‘비워내라’ 강조하는 책의 봇물이 반갑지만은 않다. 비워냈을 때 실제로 편안해지는 공간이 한국의 도시에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저자는 “정리정돈 유행에 얽매이지 말고 지루한 질서와 단조로움에서 벗어나라”고 권한다. 물론 뉴욕과 서울의 생활공간 규모 차이를 감안하면 “깨끗하게 정리된 집보다 지저분한 집에서 사는 편이 훨씬 낫다”는 그의 말 역시 무턱대고 따를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물건을 사고, 물려받고, 모으기와 여기저기 늘어놓기를 좋아하는 게 사람의 자연스러운 습성”이라는 지적은 비움과 정리의 강박이 은근히 움직임을 옥죄는 일상에서 역설적인 숨통을 틔워준다.

“누가 진짜 정리 잘하는 사람이었을까.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살인마 주인공,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 1970년대 미국에서 악명 높았던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도 깔끔 떠는 정리 마니아였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나는 어지르고 살기로 했다#제니퍼 매카트니#정리정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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