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원’이 일대일 랩 배틀을 하는 모습. ‘쇼미더머니’ 시즌5 지원자인 그는 이미 시즌4에서 얼짱 래퍼로 화제를 모았다. 엠넷 화면 캡처
1990년대 MC해머, 퍼프대디, 나스, 투팍, 닥터드레 등 미국 본토 힙합을 들으며 청소년기를 보낼 즈음 들어봤던 한국 힙합은 영 아니었다. 영어 가사에 비해 우리말 가사는 어색했고 비트는 촌스러웠다.
나이가 들어 힙합과 멀어졌지만 3년 전 우연히 랩 경연대회 ‘쇼미더머니’ 시즌2(엠넷)를 보고 가슴이 뛰었다. 국내 힙합 뮤지션들의 노력 덕분인지 비트는 귀에 착착 붙었다. 각운, 두운을 맞춘 운율, 동음이의어를 사용해 중의적 의미를 만드는 ‘펀치라인’은 국어학자와 시인이 함께 연구한 듯 절묘했다. 그렇게 기자는 이 프로그램에 빠져들었다.
지난달 13일 처음 방영된 ‘쇼미더머니’ 시즌5(이하 시즌5)에도 기대가 컸다. 하지만 4회까지 방영된 현재 지루함을 참기 어렵다. 시청률도 1.5∼2.5% 정도로 시즌3(평균 시청률 3.5%)보다 떨어졌다. 10, 20대 사이에서 화제성도 예전만 못하다.
우선 경연에 나온 래퍼들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4회(3일 방영)에서 가장 많은 방송 분량을 차지한 우태운은 시즌4에 출연했고, 당시 심사위원 ‘지코’의 형으로 화제가 됐다. 시즌5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씨잼’도 시즌3에서 4강까지 간 래퍼다. 또 다른 우승 후보 비와이, 서출구도 시즌4에 나왔다. 시즌3 ‘바비’, 시즌4 ‘송민호’처럼 시청자의 주목을 끄는 아이돌 래퍼 역할을 해야 할 ‘원’도 시즌4에서 얼짱으로 소개됐던 인물이다. 부산 래퍼 ‘정상수’는 시즌3부터 연속 출연 중이다.
시청자들도 “속편을 보는 것 같아 지루하다”고 말한다. 단순히 같은 얼굴이 또 나왔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동안 이 프로그램에서는 음악 못지않게 지원자들의 ‘서사’가 중요했다. 지원자가 점차 실력이 느는 성장, 악당형 래퍼와 호감형 래퍼의 대결, 경쟁 속 우정 등 이야기가 경연 속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시즌5 주요 출연자들은 이전 시즌에 나와 자신의 서사를 소모해버린 상태다. 새로운 스토리텔링이 이뤄지기 어렵다.
이상하다. 시즌5에 역대 최다인 9000명의 지원자가 몰리지 않았나. 허수다. 힙합 전문가들에 따르면 ‘힙합 좀 한다’는 국내 래퍼의 대다수가 이 프로그램에 한 번쯤 출연했다. 이를 의식한 듯 제작진은 시즌5에서 미국 예선을 선보이는 등 변화를 시도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어차피 한국 본선에 오기 힘든 미국 지원자의 영어 랩은 긴장감만 떨어뜨렸다.
엠넷 내부에서는 시즌4에서 여성 비하, 속옷 노출 등으로 사회적 비판이 컸던 점도 재미를 반감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엠넷 관계자는 “시즌5는 제발 사고 없이 가자는 생각이 강하다. 자극적 편집을 자제한다”고 말했다. 시즌5가 밋밋해 보이는 또 다른 이유다.
자초한 측면도 있다. 흑인음악 전문 웹진 리드머의 강일권 편집장은 “그동안 쇼미더머니가 도를 넘은 저급한 자극으로 이슈를 만들다 보니 시청자들은 이제 더한 자극을 찾게 됐다”며 “쇼미더머니에 나와 화제를 뿌린 래퍼들이 실력에 비해 과도한 명성을 얻는 반면, 실력파 래퍼들이 배제되는 현상도 생겼다. 이 프로그램이 한국 힙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 5개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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