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목련꽃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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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 김달진(1907∼1989)

봄이 깊었구나
창밖에 밤비 소리 잦아지고
나는 언제부터선가
잠 못 자는 병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지난밤 목련꽃 세 송이 중
한 송이 떨어졌다.
이 우주 한 모퉁이에
꽃 한 송이 줄었구나.


 
올해 봄은 유난히 아쉽다. 더위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고, 대기가 맑지 못했던 탓에 봄을 즐길 시간도 적었다. 해님 아래 앉아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온 세상의 꽃과 새싹이 용기를 주는 계절인데, 이렇게 보내자니 억울하기까지 하다. 아쉬운 탓에 깊은 봄을 읊은 시를 하나 꺼내어 본다. 이 시를 읽는 동안에는 우리 마음에 고운 봄이 돌아오려나.

김달진 시인의 ‘목련꽃’에는 시와 잘 어울리는 몇 가지 조건이 전제되어 있다. 우선 바탕이 되는 계절이 봄이다. 부드럽고 향긋한 느낌이 신선해서 시인의 감각은 더욱 활발해진다. 게다가 밤이다. 밤은 일상의 일이 정리되어 자신의 맨얼굴과 목소리를 확인하기 적절한 시간이다. 봄이고 밤인 것도 시 쓰기에 적절한 조건인데 여기에 비까지 더해져 있다. 봄비가 대지를 두드리는 소리는 마치 마음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이런 밤에 괜히 싱숭생숭해서 시인지 일기인지 모를 글들을 써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얼굴을 붉히며 지우더라도, 봄과 비가 함께하는 밤은 잠 못 들게 한다.

깊은 봄의 유정한 마음이 1연의 주제라면, 2연은 새로운 국면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간밤에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잠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 일어나 보니, 그새 아주 큰일이 벌어져 있었다. 겨우 피었던 목련꽃 세 송이 중에서 한 송이가 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이 큰일일까. 큰일이라고 말하는 그 마음이 시의 마음이고 고운 마음이다. 언젠가는 떨어질 꽃 한 송이가 생각보다 일찍 진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이 사건은 심지어, 우주적 손실이다. 그러고 보니, 꽃나무가 겨우내 지키고 밀어올린 저 꽃이 보물이 아닐 리 없다. 열심히 피었던 꽃이 일찍 져버렸다는 사실이 애석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이 시를 읽으면 우리가 슬퍼해도 되는 이유를 찾게 된다. 구의역 어린 노동자를 애도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적혀 있다. ‘이 우주 한 모퉁이에, 꽃 한 송이 줄었구나.’ 우주는 그만큼 어두워졌을 것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목련꽃#김달진#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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