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상 교수, 환두대도 정밀 분석… 100년 앞서 고도 금속공예 기술 존재
‘중국서 백제에 하사’ 日 주장 반박
충남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 환두대도. 둥근 고리 안에 용머리가 보인다. 서경문화사 제공
1971년 충남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환두대도(環頭大刀·둥근고리자루큰칼). 자루 끝에 달린 용머리를 가운데 두고 쌍룡(雙龍)이 장식된 둥근 고리가 감싸고 있다. 서로의 꼬리를 물려고 휘감아 도는 쌍룡은 미세한 비늘까지 세밀하게 표현돼 있다. 손잡이는 금실과 은실을 번갈아 감은 뒤 끝부분에 금판을 붙여 화려함을 더했다.
당시 학계 일각에서는 이 칼이 너무도 정교해 중국 양나라에서 제작된 뒤 백제에 하사된 것이라는 견해가 나왔다. 특히 동아시아 환두대도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일본 학계는 백제나 가야의 환두대도가 중국에서 전래돼 별다른 변용 없이 일본 열도에 고스란히 전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한반도는 단순한 전달 통로에 불과했다는 논리다.
백제, 가야 환두대도의 도상들을 정밀 분석해 일본 학계의 ‘한반도 폄훼론’을 극복한 연구 성과가 최근 발표됐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신간 ‘삼국시대 장식대도 문화 연구’(서경문화사)에서 6세기 초반 조성된 무령왕릉보다 100년이나 앞선 시점에 환두대도에 적용된 고도의 금속공예 기술이 백제에 존재했음을 밝혔다. 5세기 초반 조성된 충남 공주시 수촌리 1호분에서 나온 환두대도를 분석한 결과 균일한 두께의 아말감 도금과 정밀 주조 기법 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백제는 이미 5세기 초반 고유한 양식의 최고급 금공품을 제작하고 있었다”며 “백제는 외교관계를 통해 가야와 일본 열도로 환두대도 완제품과 기술자들을 전달해 줬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중원 문화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꼽히는 환두대도의 용무늬 등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최근 경기 화성시 기안동 제철유적에서 발견된 낙랑계 토기와 기와를 주목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313년 낙랑이 고구려에 의해 멸망한 직후 낙랑 제철장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교수는 “백제 환두대도 주룡문의 계보를 서진(西晉) 금공품에서 찾을 수도 있다”며 “이런 맥락에서 낙랑의 환두대도 장인들이 백제로 이주해 기술을 전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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