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생기를 돌려주는 지방 식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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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들썩한 ‘쿡방’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TV나 신문에서 ‘셰프’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웃고 말하고 요리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어렵지 않게 음식을 내놓는 방법이나 자신만의 레시피를 공개한다. 현란한 칼솜씨를 뽐내면서.

쿡방 시대가 다가오기 전 나는 맛집 순례를 즐겼다. 성인이 되면서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됐고 직장 때문에 서울로 상경해서는 더욱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서울에는 맛있고 특이한 음식이 수두룩할 테니 이것저것 경험해 보고 나중에 나의 레시피에 적용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울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맛집은커녕 집 앞의 식당도 찾아갈 힘이 없었다. 한번 찾아가려고 치면 버스나 지하철을 이리저리 갈아타야 했다. 그때만 해도 검색이란 것이 흔하지 않아 여기저기 물어가며 찾아가야 했다.

그때마다 ‘너무 멀다’ ‘이렇게 힘들게 와서 먹을 만하진 않다’란 생각이 들었다. 힘들게 시작한 서울생활이어서 그런지 제일 맛있고 기억에 남는 음식은 일 끝나고 오르막길 옆 동네 슈퍼에 파는 손가락 사이즈의 맛살과 초록색 소주인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음식점과 눈이 돌아갈 정도로 화려한 곳에서 ‘먹었던 음식’ 하면 지금 떠오르는 게 그것뿐이라니….

지금 나의 고향에는 유명한 곳이 참 많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 줄 서 한두 시간 기다리다 밖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의식하며 헐레벌떡 먹고 일어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자주 가는 곳은 유명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조금 허름해도 진정한 손맛과 정성이 들어간 곳이다.

우리 식당 근처의 돈가스집에 가면 돈가스와 샐러드뿐만 아니라 찌개와 공깃밥까지 내어준다. 푸짐한 인심도 감격스럽지만 살이 통통 오른 돼지고기 맛이 일품이다. 그런가 하면 장구 공연과 창 등 손님들의 즉석 공연이 이뤄지는 술집도 있다. 안주는 ‘주인장 맘대로’다. 그날그날 사장님이 알아서 안주를 내어오고 막걸리나 소주는 손님이 알아서 꺼내 먹으면 된다.

이 외에도 숨겨진 맛집이 많지만 그런 곳을 소개하고 싶지 않다. 두고두고 나만 혼자 알면서 가까운 사람들과 즐기고 주인장과도 웃으며 인사 나누고 그간 살아왔던 이야기를 풀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식당도 그런 곳이었으면 한다.

꽃 피는 봄날이면 그곳에 가서 큰 창가 옆에 앉아 후후 불어가며 홍차를 한잔해야 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큼지막한 해물파전에 걸쭉한 막걸리를 한잔해야 한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날이면 그곳 평상에 앉아 닭다리 하나 쭉 찢어 입안 가득 넣고 오물거려야 한다.

1년 365일 전주 생활에서 나에게 음식은 항상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음식에는 모두 ‘나만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이처럼 내 생활과 이어져 있는 음식을 파는 곳이 정말 나만의 맛집이 아닐까.

 
※필자(42)는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전북 전주로 내려가 남부시장에서 볶음요리 전문점인 더 플라잉팬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주에서 김은홍
#쿡방#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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