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잘난 맛에 사시나요? 그것도 병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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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의 나르시시스트/제프리 클루거 지음/구계원 옮김/400쪽·1만6500원·문학동네

“안네는 뛰어난 소녀였습니다. 제 팬이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요.”

캐나다 팝스타 저스틴 비버가 2013년 안네 프랑크의 집을 방문한 후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미국 힙합스타 카녜이 웨스트는 “저는 카녜이 웨스트란 이름이 스티브 잡스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인터넷, 다운타운, 패션, 문화의 스티브죠.”

이쯤 되면 병이다 싶다. 도널드 트럼프는 트럼프 모기지, 트럼프 골프, 트럼프 대학까지, 소유한 모든 것에 자기 이름을 붙인다. 자기애의 ‘끝판왕’이다.

저자는 나르시시즘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분석한다. 나르시시스트의 마음에는 인정, 관심, 보상에 대한 마르지 않는 샘이 자리한다. 성욕도 강해 자신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자손도 많이 낳는 편이다.

무리한 합병으로 주가가 반 토막 나고 직원 3만 명을 해고하고서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은 칼리 피오리나 HP 전 최고경영자(CEO)는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다. 그는 오히려 “합병은 좋은 아이디어였고 수십억 달러나 절감했다”고 강변했다.

미디어와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정치인, 연예인, 기업인은 물론이고 일반인까지 앞다퉈 “날 좀 봐 줘요”라고 아우성치는 세상에서 나르시시즘은 이들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유효하다. 히틀러, 사담 후세인처럼 재앙을 초래한 인물의 심리에도 나르시시즘이 깔려 있다.

무한한 자기애의 아이콘인 도널드 트럼프(왼쪽사진)와 저스틴 비버. 동아일보DB
무한한 자기애의 아이콘인 도널드 트럼프(왼쪽사진)와 저스틴 비버. 동아일보DB
풍부한 사례를 읽다 보면 술자리에서 유명인의 뒷담화를 듣는 기분이다. 멋진 연기를 보여주는 숀 펜과 러셀 크로는 사진기자에게 주먹을 날리거나 호텔 직원에게 전화기를 던지는 남자들이었다! 앨릭 볼드윈은 카메라만 꺼지면 신경질을 부리기 일쑤란다. 여성 보좌관이 있어도 홀딱 벗은 채로 돌아다니고, 기자회견에서 소변을 보며 대화하는 린든 존슨 미국 전 대통령의 엽기적인 행동에는 입이 떡 벌어진다. 이 모든 게 나르시시즘 때문이란다.

나르시시스트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애인이라면 헤어지는 게 좋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하거나 더 매력적인 상대를 발견하는 즉시 떠날 것이므로. 부하의 공을 가로채는 일에도 거리낌 없는 상사를 뒀다면 주변에 자신의 업적을 미리 알리는 게 좋다. 그래도 안 되면 회사를 옮기는 게 낫단다. 헌데 한 번 상사가 영원한 상사는 아닌 법인데 직장을 그만두는 게 옳을까 고개가 갸웃해진다.

관심에 목마른 이라면 책을 보면서 자신이 애교 수준의 나르시시스트인지, 자기 외에는 아무도 안중에 없는지, 혹은 즐거움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악’의 단계에까지 와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축에 속하는 사람은 도대체 왜들 저러고 사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자신이 해낸 일에 뿌듯해지고,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감탄하더라도 너무 놀랄 필요는 없다. 과하지만 않다면 나르시시즘은 인생을 즐기고 기쁨을 맛보게 하는 요소가 되니까. 중요한 건 절제다.

책 뒤에는 자기애 성격 검사(NPI)가 실려 있다. 원제는 ‘The Narcissist next door’.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옆집의 나르시시스트#제프리 클루거#저스틴 비버#도널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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