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전문기자의 休]2600그루의 유혹, 오매 꽃멀미 나겠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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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히로사키로 떠나는 벚꽃 여행

지고도 아름다운 꽃은 동백과 벚꽃뿐. 4월 하순 성 안팎을 에두른 2600그루 벚나무에선 가지마다 꽃망울이 터지고 그 아래 해자의 수면은 성급하게 떨어진 꽃잎으로 새하얗게 뒤덮인다. 해자를 가로지른 게로바시 뒤로 히로사키 성이 보인다. ‘골든트리오’ 중 하나. 일본국제관광진흥기구 제공
지고도 아름다운 꽃은 동백과 벚꽃뿐. 4월 하순 성 안팎을 에두른 2600그루 벚나무에선 가지마다 꽃망울이 터지고 그 아래 해자의 수면은 성급하게 떨어진 꽃잎으로 새하얗게 뒤덮인다. 해자를 가로지른 게로바시 뒤로 히로사키 성이 보인다. ‘골든트리오’ 중 하나. 일본국제관광진흥기구 제공
22년간 100번이 넘게 일본을 취재했지만 만개한 벚꽃으로 춘색과 풍광이 절정에 이른 모습을 직접 본 것은 딱 한 번뿐. 아오모리 현의 이 히로사키에서다. ‘일본의 7대 성’에 꼽히며 벚꽃 명소로도 이름난 히로사키(弘前) 성의 벚꽃축제로 안내한다.

아오모리 서쪽 쓰가루 평야의 중심인 히로사키 시. 아오모리 시내에서 가자면 오우혼센(奧羽本線)의 전차(기차)를 타야 한다. 시내에서 역은 두 개. 나는 신칸센 열차가 서는 신아오모리 역 대신 아오모리 역을 택했다. 1894년 오우혼센 개통 당시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역으로 시내 중심 부둣가에 있다.

그곳에서 역무원으로부터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122년 전 오우혼센 개통 때 공식 종착역은 아오모리였지만 철도는 히로사키까지 연장됐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당시 히로사키 시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1871년 메이지정부가 에도시대의 번(藩)을 없애고 새로운 행정단위인 현(縣)을 설치하기 전에 이곳은 히로사키 번이 다스리고 있었고 그 중심이 히로사키 성이었다. 행정개혁을 하면서도 히로사키 시의 명성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

일본의 성은 대체로 외곽은 물길로 조성한 해자(垓字)가 둘러싸고 있고, 그 안쪽은 범접을 허용치 않는 높고 가파른 돌 축대다. 성채는 축대 위에 날렵한 모습으로 짓는다. 성채의 꼭대기에는 ‘덴슈가쿠’라는 망루가 있다. 성안에는 성채를 중심으로 여러 마루(丸·다양한 시설과 진지)를 짓고, 성벽엔 높은 망루를 둔다. 1611년에 축조한 히로사키 성도 비슷하다. 그런데 이 성이 일본 7대 성에 들게 된 이유는 뭘까. 에도 후기에 재건한 모습을 현재까지 잘 보존하고 있어서다. 이런 성은 일본에서도 흔치 않다고 한다.

이 성을 만들기 시작한 이는 오우라 다메노우(1550∼1607). 혼슈 북부의 최고 실력자였던 난부(南部) 가문의 가신으로 정국의 혼란을 틈타 난부가의 한 성을 기습공격으로 장악해 독립했다. 그리고 당시 최고 실력자였던 쇼군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도와 영지를 받는다. 그때 자신의 성을 ‘쓰가루(津輕)’로 바꾸는데 이 일대가 쓰가루로 불리게 된 이유다. 160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에는 천하의 대세를 가르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히데요시의 반대편인 동군에 가세해 수장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정을 받고 ‘히로사키 번’을 연다. 성 건축은 그 3년 후에 시작했는데 오우라는 곧 숨지고 1611년에 성을 완공한 이는 그의 아들이다. 그게 이 히로사키 성이다.

성을 찾은 그날은 벚꽃이 절정으로 치닫던 화창한 날이었다. 히로사키 역에서 성이 있는 히로사키 공원까지는 시내버스로 15분 거리. 창밖을 보니 온 시내가 벚꽃놀이를 나온 상춘객으로 북적댔다. 공원은 규모가 꽤 컸다. 해자 주변에 조성한 평지가 모두 휴식공간이었고 하얗고 분홍빛의 벚꽃으로 꽃동산을 이뤘다. 건듯 바람이 불면 꽃은 비가 되어 내렸다. 수양버들처럼 가지를 늘어뜨린 물가의 수양벚나무 아래선 연인들의 속삭임이 꽃이 되어 피어났다.

공원 벚나무는 2600그루. 1715년 번의 한 무사가 교토에서 가져온 25그루가 그 시작이다. 나머지는 이후에 시민들이 심은 것. 그런데 히로사키는 일본 최대의 사과 산지이자 ‘후지’ 품종을 개발한 곳이기도 하다. 사과나무 경작과 재배를 통해 습득한 기술은 벚나무 개량에도 기여했다. 다양한 빛깔과 모습으로 공원을 뒤덮은 50종의 벚나무가 그걸 말해준다.

아오모리 명물 호타테(가리비) 도시락
아오모리 명물 호타테(가리비) 도시락
벚나무 아래선 꽃놀이가 한창이었다. 일본인의 벚꽃놀이는 온 가족이 벚나무 아래 자리를 펴고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쉬는 것. 직장 모임도 많다. 한낮인데도 잇쇼빙(1.8L들이 큰 병)의 사케를 잔에 따라 돌리는 그룹도 있었다. 꽃에 취하고 풍경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펼친 도시락은 그 화려함이 벚꽃 못지않다. 나도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열었다. 히로사키 역 근처에서 산 것인데 벚꽃 아래서 먹으니 별미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일본인들이 기를 쓰고 벚꽃놀이에 나서는 이유를.
히로사키(일본 아오모리 현)에서

:: 여행 정보 ::

찾아가기: ◇아오모리 ▽항공: 대한항공이 인천 직항 편을 매일 운항 중. 2시간 40분 소요. ◇히로사키 ▽철도: 신칸센(도쿄 출발 하야부사·하야테호)으로 신아오모리 역에서 내린 뒤 쓰가루호(특급)로 갈아탄다. 도쿄∼신아오모리는 3시간 10분, 혹은 3시간 20분, 신아오모리∼히로사키는 약 30분.

현지 교통: ◇홋카이도 신칸센 개통: 26일 아오모리(신아오모리 역)∼하코다테(신하코다테 호쿠토 역) 구간의 148.9km가 개통되며 ‘홋카이도 신칸센’ 시대가 열린다. 소요시간은 1시간 1분. 도쿄에선 4시간 2분. ◇한국어안내 렌터카: 올해부터 아오모리 현의 도요타 브랜드 렌터카엔 한국어안내 내비게이션이 장착됐다.

히로사키 골든트리오: 히로사키 공원 벚꽃축제에서 꼭 봐야 할 아름다운 세 풍경. 첫째는 해자를 가로지르는 빨간 빛깔의 ‘게로바시(다리)’ 아래서 멀리 덴슈가쿠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리와 주변의 벚꽃 풍경, 둘째는 덴슈가쿠에 오르면 눈에 들어오는 저 멀리 반쯤 눈에 덮인 이와키 산과 분홍빛 벚꽃으로 만발한 성안의 수양벚나무가 어울려 빚어내는 풍경, 셋째는 떨어진 꽃잎으로 뒤덮여 핑크빛 융단으로 변하는 해자 수면의 벚꽃 풍경(5월 초∼중순)이다. 올 개화 시기는 4월 23일. 한번 피면 4∼9일 정도가 피크. 히로사키 공원 벚꽃축제 기간엔 야간개장도 한다. ‘라이트업(Light Up·조명연출)’으로 색다른 ‘야(夜)사쿠라’도 즐길 수 있다. 히로사키 벚꽃축제는 1918년 시작해 올해로 99회째.

히로사키 사과:
히로사키에는 세 가지 명물이 있다. 성과 벚꽃, 사과. 사과는 전국 생산량의 20%를 차지하는 명산지. 중국에서 생산되는 사과의 8할을 차지하고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후지 사과’의 고향이다. 후지는 1930년대 후반 후지사키 정(후지사키 시)에 있던 농림성의 원예시험장에서 개발한 품종. 현재도 일본에서만 연간 90만 t을 생산하는데 이 중 50만 t이 아오모리에서 난다. 이 후지를 한국에서만 ‘부사’라고 부르는데 같은 발음의 ‘후지(富士·부사)’ 산과 동일시한 데서 초래된 오해의 소산. 사과 ‘후지(藤)’는 지명 ‘후지사키(藤崎)’에서 왔다.

5월 초 벚꽃이 질 무렵이면 사과 꽃이 핀다. 사과의 본고장 히로사키에서 열리는 사과 꽃 축제도 볼거리다. 장소는 히로사키 사과공원(역에서 버스로 15분 거리). ‘쓰가루 후지’라고 불리는 이와키 산을 배경으로 수천 그루의 사과나무가 피워내는 하얀 꽃의 향연. 좀처럼 만날 수 없는 특별한 자연의 이벤트다. 아오모리 역 부근 특산품매장 ‘에이 팩토리(A-Factory)’에서는 사이더(사과와인)를 비롯해 사과로 만든 식초 파이 간장 등을 팔고 있다.

지자케: 지자케(地酒)란 ‘그 지역 양조장에서 생산한 사케(청주)’. 아오모리 현에는 ‘덴슈(田酒)’라는 유명 브랜드를 생산하는 니시다(西田) 주조점을 비롯해 14개의 양조장이 있다.

관련 사이트:
◇히로사키 ▽관광컨벤션협회(한글): www.hirosaki-kanko.or.jp ▽관광가이드(한글): www.kr-aomori.com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히로사키#아오모리#히로사키 성#벚꽃놀이#지자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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