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북카페]日공직사회에 드리운 ‘비정규직 그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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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공무원의 현재’

일본 도쿄(東京) 근교의 직장여성 A 씨는 두 달 일하고 두 달 쉬는 생활을 수년째 반복하고 있다. 연속해서 2개월 넘게 일할 경우 사회보험에 가입해 건강보험료 등을 내야 한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와 재고용을 반복하는 편법을 쓰는 것.

그런데 의외의 사실은 이 같은 행태를 보이는 ‘악덕 고용주’가 ‘민간기업’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라는 것이다. A 씨가 일하는 직장은 ‘시립도서관’이다.

간바야시 요지(上林陽治) 씨는 지난해 11월 발간된 ‘비정규 공무원의 현재’라는 저서에서 A 씨와 같은 불안한 고용과 착취가 지자체에서 일반화돼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2012년 출간돼 화제를 불렀던 ‘비정규 공무원’의 개정보완판이다.

비정규 공무원 문제에 천착해 온 저자는 일본의 전체 공무원 중 3분의 1인 60만∼70만 명이 비정규 공무원이라는 통계를 제시하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책에 나온 사례를 보면 일부 지자체의 행태는 악덕 기업 저리 가라다. 일본 중부 호쿠리쿠(北陸) 지역 한 도시의 공민관(마을회관)에서 일하는 비상근 공무원은 정규직보다 하루 근무시간이 3분 짧다. 사실상 상근 직원임에도 일주일에 고작 ‘15분’ 적게 일한다는 이유로 비상근으로 분류돼 수당과 복지 혜택을 제대로 못 받고 있다.

아이치(愛知) 현의 쓰시마(津島) 시는 기간이 만료된 임시보육사의 고용을 중단하면서 자발적으로 퇴직을 원했다는 퇴직원에 서명하기를 강요하고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했다는 서류를 만들었다. 이 때문에 나중에 퇴직자가 실업급여에서 불이익을 받는 일이 생겨 문제가 됐다.

문제는 비정규 공무원이 공무원이기 때문에 일반 직장인처럼 노동계약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정규직 공무원처럼 법적으로 신분을 보장받는 상황도 아니다. 저자는 이를 ‘법적 무권리 상태에 놓여 있다’고 표현한다.

일본에서는 비정규 공무원이 급증하는 추세다. 전일본자치단체노동조합의 통계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일본에는 70만 명의 비정규 공무원이 있는데, 이는 2008년보다 10만 명가량 늘어난 것이다. 비정규 공무원 비율도 27.4%(2008년)에서 33.1%(2012년)로 늘었다.

저자는 비정규 공무원 증가가 1990년대 초반 이후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장기 침체에 빠진 것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먹고살기 힘들어진 주민의 행정수요는 늘어난 반면에 지방 재정은 갈수록 어려워지다 보니 인건비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규직 지방 공무원 수는 1994년 328만 명에서 2014년 274만 명으로 16.5%가량 줄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연봉 200만 엔(약 2160만 원) 안팎을 받는 비정규직이 채웠다. 비정규 공무원의 급여는 정규직의 3분의 1이나 4분의 1에 불과하다. 일본 전체 평균의 절반가량에 불과해 ‘워킹푸어’ 계층으로 분류된다.

저자는 비정규 공무원의 증가가 대민 서비스 저하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구직을 지원하는 헬로워크센터의 경우 60%가 비정규직이다. 가정폭력을 주로 상담하는 여성상담 담당자는 비정규직 비율이 80%에 이른다. 본인 스스로 경제적 자립이 어렵고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상담원들이 의뢰인의 자립을 돕는 것이 가당키나 하냐는 것이 저자의 문제 제기다. 비정규 공무원 4명 중 3명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여성 빈곤을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도 지목된다. 실제로 비정규 비율이 높은 급식조리원, 보육사, 도서관 사서 등의 직군 종사자는 여성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주민의 복지 증진’이라는 지자체의 목적을 위해서라도 비정규 공무원의 권익을 보호하는 법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근 비정규 공무원이 급속하게 늘고 있는 한국에서도 참고할 만한 책이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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