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글렌 굴드·앤디 워홀… 예술가들은 왜 스스로 病者가 되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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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병 환자들/브라이언 딜런 지음·이문희 옮김/380쪽·1만8000원·작가정신

1959년 12월. 스물일곱 살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미국 피아노 제조업체 스타인웨이앤드선스의 뉴욕 본사 사무실을 방문했다. 굴드는 깊고 풍부한 소리의 피아노를 만드는 이 회사에 줄곧 “약화된 하프시코드와 약간 비슷한 소리를 내는 가볍고 타이트한 액션의 악기를 제조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불가능에 가까운 기술적 주문을 해대는 이 저명한 연주자를 직원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수석 조율사 윌리엄 후퍼가 그의 곁을 지나치며 왼쪽 어깨를 두드리는 순간, 굴드가 몸을 움찔하며 말했다.

“만지지 말아요. 싫어요.”

몇 주 뒤 굴드는 “X선 촬영 결과 왼쪽 어깨뼈가 0.5인치(약 1.3cm) 정도 눌렸다가 회복되면서 왼손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을 조절하는 신경이 압박을 받아 염증이 생겼다”며 임박했던 연주회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두 달 동안 의사 5명에게 진료를 받았다. 4주간 깁스를 한 뒤 정형외과 물리치료를 117회 받은 그는 1960년 12월 결국 후퍼와 스타인웨이앤드선스를 상대로 30만 달러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왼쪽 어깨와 목을 내리눌려 팔꿈치를 의자 팔걸이에 부딪히면서 목과 척추 신경에 상해를 입었다”는 주장이었다.

다음 해 8월 헨리 스타인웨이 사장과 굴드가 뉴욕 한 호텔 방에서 독대했다. 그리고 굴드가 쓴 치료비와 소송 비용 9372달러 35센트를 지불하고 소송을 취하하기로 합의했다. 스타인웨이는 곧바로 전 직원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지극한 정중함으로 굴드를 다시 맞이하되, 이유와 상황을 막론하고 그 어떤 신체 접촉도 감행하지 말라.”

이 책의 저자는 미국 예술계간지 ‘캐비닛’의 영국지부 편집장이다. 그는 굴드, 앤디 워홀, 마르셀 프루스트, 샬럿 브론테 등 천재 아홉 명의 삶에서 심기증(心氣症·건강염려증)의 흔적을 발췌해 엮어냈다. 그들에게 심기증은 예술가 또는 사상가로서의 삶 자체, 혹은 열정적인 생산 시기를 구축한 매개 조건이었다.

굴드는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에도 “기침하는 청중 때문에 괴롭다. 세균들로부터 내 몸을 보호하기 쉽지 않다”고 불평하기 바빴다. 이에 대해 저자는 “굴드의 기행은 요동치는 세상과 자신 사이에 놓은 완충장치였다. 유약함과 혼란을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육체적 존재로서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어 자신의 고독과 심기증 자체를 연주하려 한 것”이라고 썼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상상병 환자들#글렌 굴드#앤디 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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