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DNA는 안다, 인류 진화의 비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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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스반테 페보 지음/440쪽·1만8000원·부키

네안데르탈인 게놈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스반테 페보가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을 들고 있다. 페보는 자신의 작업을 “진화를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제공
네안데르탈인 게놈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스반테 페보가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을 들고 있다. 페보는 자신의 작업을 “진화를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제공
영화 ‘엑스맨’은 유전자 변이로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 뮤턴트(돌연변이)들과 평범한 인간들(호모 사피엔스)의 다툼에 관한 이야기다. 손등에서 무엇이든 벨 수 있는 칼날이 나오는 울버린(휴 잭맨) 같은 이들이 뮤턴트다. 여기서 상상 하나. 뮤턴트들이 승리하고 인간들은 멸종했다고 치자. 3만 년 뒤 뮤턴트의 후손들은 조상에 대해 이런 논쟁을 벌일 것이다.

“인간과 뮤턴트들이 같은 시기 공존했던 것은 틀림없는데, 인간들은 왜 사라졌을까? 뮤턴트와의 경쟁에서 도태했을까? 아니면 뮤턴트가 인간을 모두 잡아먹었을까?” “인간과 뮤턴트는 섹스를 하고 아기를 낳을 수 있었을까?” “인간 화석에서 DNA를 추출해보니 우리와 일부가 같군. 우리는 뮤턴트의 후손이면서 인간의 후손이기도 한 것 같아.”

사실 이는 상상이 아니라 현대 과학이 다루고 있는 주제다. 2010년 놀라운 논문이 ‘사이언스’에 발표된다.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에서 핵 DNA를 추출해 분석한 결과 현대인의 유전자 안에 2만4000년 전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2% 안팎으로 섞여 있다는 것. 기존 학설과 달리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와 이종교배를 했고, 우리가 그 후손이라는 얘기다. 논문의 저자인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유전학분과장은 이 유전자를 ‘내적(內的) 화석’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이집트 고대사에 매료됐던 어린이가 우여곡절을 거쳐 네안데르탈인 게놈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1955년 스웨덴에서 태어난 저자는 웁살라대에서 분자생물학을 공부하면서도 이집트에 대한 관심을 놓지 못한다. 급기야 지도교수 몰래 이집트 미라에서 DNA를 추출하고 염기서열을 분석해 이를 1985년 ‘네이처’에 발표한다.

저자가 이 같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까지는 수많은 도전과 실패가 있었다. 저자는 죽은 조직에도 DNA가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송아지 간을 오븐에 구워 미라를 만들어 보기도 한다. 여기서는 DNA를 추출하는 데 성공하지만 이집트의 실제 미라에서 DNA를 추출하는 데는 여러 차례 실패하기도 했다.

자신의 기존 연구와 정반대의 결론이 나오기도 한다. 저자는 1997년에는 모계로 유전되는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출해 분석한 뒤 현생인류와 그들이 독자적인 종으로 이종교배를 하지 않았다는 요지의 논문을 ‘셀’에 실었다.

책은 논문을 실을 학술지 선정이나 연구기금 확보, 과학자들의 협업과 경쟁 등 과학 연구가 어떻게 진척되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2006년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의 뼛조각을 얻기 위해 크로아티아로 가다가 방문 며칠 전 시료 채취가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는다. 채취에 반대하는 누군가의 압력이 들어온 것. 그는 수많은 현지 관계자들을 이 프로젝트에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뼛조각 8점을 얻는 데 성공한다.

저자는 고대의 시료에서 DNA를 추출해 분석하는 작업을 “진화를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가 나타나기 전에 사라졌기 때문에 이종교배는 불가능했다는 반론도 나오는 등 고인류학은 논쟁이 활발한 분야다. 그러나 공상과학 같은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저자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지난해 아마존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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