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한글서신부터 21세기 전자메일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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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한글박물관 한글편지전 개막
시대를 아우른 100여점 전시… 미처 부치지 못한 학도병 편지도

군관 나신걸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편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다.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군관 나신걸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편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다.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안부를 그지없이 수없이 하네. 집에 가서 어머님이랑 아기랑 다 반가이 보고 가고자 하다가 장수가 혼자 (집에) 가시며 날 못 가게 하시니, 못 가서 다녀가지 못하네. 이런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꼬…. 분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울고 가네.”

편지의 주인공은 나신걸(1461∼1524). 영안도(永安道·현 함경도) 경성에서 군관(軍官)으로 지내던 그는 1490년 무렵 고향인 충청도 회덕에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한글 편지에 담아 부인 맹씨에게 보냈다. 2012년 5월 대전 유성구 금고동 안정 나씨 묘역에서 발견된 이 편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 21일부터 6월 7일까지 기획특별전 ‘한글 편지, 시대를 읽다’를 연다. 이번 전시에선 각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상과 언어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한글 편지 100여 점이 전시된다. 한글 편지는 임금은 물론이고 노비까지 주고받았다.

“밤사이 평안하시었습니까? (궁에서) 나가실 제 내일 들어오옵소서 하였사온데 해창위(현종의 부마 오태주)를 만나 못 떠나셨습니까? 아무리 섭섭하셔도 내일 부디 들어오옵소서.”

숙종이 1680년 즈음에 딸(숙종의 누이)의 집에 가 있는 어머니 명성왕후에게 보낸 한글 편지다.

“올 도지는 작년에 거두어들이지 못한 것 합하여 여섯 섬을 반드시 하여야 되지. 또 흉악을 부리다가는 나도 분한 마음이 쌓인 지 오래니 큰일을 낼 것이니 알아라.”

양반 송규렴(1630∼1709)이 노비 기축에게 밀린 도지(賭地·소작료)를 보내라고 경고하는 편지다.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학도병 이우근(서울 동성중)이 어머니에게 썼다가 부치지 못한 편지도 인상적이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이 편지는 1950년 8월 11일 포항여중 전투에서 전사한 이우근의 옷 속 수첩에서 발견됐다. 이 전투는 영화 ‘포화 속으로’(2010년)의 소재가 됐다.

이 밖에 추사 김정희, 선조, 효종, 현종, 정조가 쓴 한글 편지를 비롯해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하는 우즈베키스탄인 박율랴 씨가 유학 시절 한국어를 가르쳐 준 타슈켄트 세종학당 교사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 등도 전시된다. 한글박물관 박준호 연구사는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부터 디지털 편지까지 옴니버스식으로 조명했다”고 설명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편지#한글편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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