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지식이 있기 전, 호기심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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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CMI ‘2015년의 경영서 상’ 선정… ‘모르는 것이 힘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들 한다. 한 분야에서 높은 성취를 이룬 전문가는 존경을 받는 반면, 일반인은 끊임없이 무언가 배워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모르는 것을 두려워 말라.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는 책이 영국에서 출간돼 주목받고 있다. 컨설턴트로 일하는 스티븐 드수자와 다이애나 레너가 함께 쓴 책 ‘모르는 것이 힘이다(Not Knowing)’(사진)는 2월 차타드경영연구소(CMI)가 선정한 ‘올해의 경영서 상’을 수상하면서 화제가 됐다.

저자들은 의학의 선구자로 불렸던 고대 로마의 명의 갈렌의 일화로 얘기를 시작한다. 갈렌의 인체해부학은 1400년 동안 고전이자 지침서로 여겨졌다. 당시 유럽 의학계에서의 해부 과정은 교수가 의자에 앉아 갈렌의 지침서를 읽으면 조수가 이에 따라 해부를 하는 식이었다. 갈렌에 대한 의사들의 믿음은 너무나 강력해서, 조수가 심장의 심실 개수를 두 개로 세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갈렌이 저술한 대로 ‘심실이 네 개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저자들은 우리가 흔히 믿는 ‘안다(Knowing)’는 게 절대적인 진실은 아니라고 말한다. 갈렌의 일화처럼,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을 재확인이나 비판 없이 맹목적으로 믿는 경향이 있어서다. 우리는 잘 모르는 것을 접하면 아예 피하거나 잘 아는 전문가에게 해답을 얻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저자들은 전문가에게 해답을 구하는 게 위험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2008년 금융 위기사태 때 유수의 경제 전문가들을 배출한 명문 런던정경대(LSE)를 찾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학자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여러분 같은 전문가들이 경제 위기가 닥쳐올 것을 예측하지 못했죠?” 실은 예측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앞서 과도한 신용과 대출 위기에 대해 경고하는 지표들이 쏟아져 나온 상태였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위기관리를 잘 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현실은 예측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전문가들이 ‘아는 것’이 부작용을 일으킨 대표적인 예다.

저자들은 ‘모르는 상태를 즐기라’고 역설한다. 잘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이를 두려워하거나 피해야 할 장애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의 장으로 생각을 전환하라는 것이다. 2005∼2012년 영국에서는 252종의 신문이 사라졌다. 종이 신문에서 디지털 신문으로 패러다임이 바뀐 현상에 따라 나타난 결과였다. 이때 단 하나의 신문사가 발상의 전환과 혁신을 통해 이전보다 더 큰 흑자를 이끌어 냈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T)이다. 다른 신문들이 스캔들을 폭로하겠다며 정보제공자들에게 공을 들이는 동안 FT는 양질의 기사를 만들기 위한 에디터들을 뽑는 데 힘을 쏟았다. ‘FT는 고급 정보만 제공한다’는 독자들의 신뢰가 커지면서 FT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새로운 지식을 배워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던 직장인들의 호응이 크다. 호주의 한 은행에서 근무하는 직원의 서평이다. ‘지식이 힘이었다면 이제는 호기심이 힘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감명 받은 부분은 미지의 세계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새롭고 흥미로운 것이 될 수 있다고 보여준 것이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jahn80@gmail.com
#모르는 것이 힘이다#Not Kno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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