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교사 변신 이슬아 “사활공부 가르치며 한수 배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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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기사 얼짱 이슬아 3단이 한국바둑고등학교 교무실에서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 순천=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
프로기사 얼짱 이슬아 3단이 한국바둑고등학교 교무실에서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 순천=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
“기보를 어떻게 외우라고 했어. 120수나 되는 것을 어떻게 그냥 외워! 흐름을 파악해야지!”

“자기 진영은 넓히고 적진은 깨고….”

“여기에 붙인 이유는 뭐야?”

14일 오전 전남 순천시 주암면 한국바둑고등학교 1학년 바둑수업시간. 프로 기사인 이슬아 3단(23)이 교실을 오가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쉴 새 없이 큰소리를 내고 있었다. 2010년 중국 광저우(廣州) 아시아경기대회 2관왕으로 체조의 손연재 등과 함께 ‘한국 5대 얼짱’으로 꼽혔고 이후 ‘댄싱 위드 더 스타’에도 나왔던 그. 지금은 학생들을 다그치는 교사의 모습이 더 어울려 보였다.

그는 학생들을 수준별 3개 그룹으로 나눠 수업을 했다. 중간 그룹에는 의미를 파악하며 실전 기보 120수를 외우게 했고, 상위그룹에는 맥심커피배 준결승전(박정환-최철한) 기보를 놓고 가르쳤다. 타이젬 6단에서 9단 실력의 상위그룹에는 패착은 뭔지, 승착은 뭔지를 종이에 적게 한 뒤 일일이 바둑판에 돌을 놓아가며 그 자리를 찾도록 했다. 부산에서 왔다는 조성직 군(16)은 “선생님의 수업이 행마의 틀을 잡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바둑교사 1개월째인 이슬아는 1주일에 16시간씩 ‘바둑기술’ 과목을 가르친다. 실전 바둑이다. 2년차 교사인 백지희 2단(29)은 바둑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이슬아는 지난해 7월 이 학교에 강의하러 왔다가 학생들이 정식 과목으로 바둑을 배우는 것에 흥미를 느껴 올 3월 바둑교사에 지원해 교사가 됐다.

“원래 가르치는 게 재미있었어요. 군부대 바둑 보급을 1년간 했고,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도 있어요. 가르친다는 게 공부하지 않고서는 안 되기 때문에 나도 공부를 하는 셈이지요. 그토록 싫어하던 사활공부를 여기서 하니까요(웃음).”

그는 학생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수업이 끝나도 개인 시간을 즐길 짬이 그리 많지 않다. 기숙사나 교무실에서 수업 교재를 준비해야 하고 사활문제 답안 등을 채점해야 한다. 학생들이 기숙사내 바둑 휴게실에서도 질문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한 달간 외출한 건 세 번뿐. 주말에 페어대회에 참가하고 김수진 이다혜 등 친한 프로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 2번 발걸음을 한 것과 여수의 집에 다녀온 게 전부다.

한때 방송활동을 하며 바둑계 내부의 곱지 않은 시선들 때문에 생겼던 마음의 상처도 어느 정도 정리된 듯했다. 그는 “개인생활이 없어 힘들기는 하지만 요즘 학생들이 농담도 하고 잘 따르는 편이어서 재미있다”고 했다. 또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요”라며 “앞으로 1년간은 다른 것 생각하지 않고 아이들과 내가 함께 발전하도록 노력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 한국바둑고등학교 ::


전국 유일의 바둑특성화고. 체육특기생으로 바둑을 잘 두는 학생을 뽑는 충암고 세명고 등과는 다르다. 주암종합고가 2013년 교명을 바꾸어 첫 신입생 40명(2개 반)을 선발했고, 올해도 2개 반을 뽑았다. 실업교육 차원의 바둑 교과와 보통 교과의 비율은 반반 정도.

순천=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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