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교수 “투명사회는 곧 감시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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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펴낸 在獨 한병철 교수

투명성이 신뢰사회를 만든다는 통념에 반기를 든 ‘투명사회’의 저자 한병철 독일 베를린예술대 교수.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투명성이 신뢰사회를 만든다는 통념에 반기를 든 ‘투명사회’의 저자 한병철 독일 베를린예술대 교수.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정치에 투명성을 요구하는 사람 중 다수는 사실 우리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이들이에요. 오늘날 투명성에 대한 요구는 정치적 결정과정의 참여자가 아닌 민주주의의 구경꾼, 관객 입장에서 정치가를 발가벗겨 추문을 즐기는 데 사용되고 있어요.”

현대사회의 성과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한 ‘피로사회’(2012년)의 저자 재독철학자 한병철 독일 베를린예술대 교수가 최근 펴낸 ‘투명사회’(문학과지성사) 한국어판은 투명성에 대한 전복적 접근으로 가득하다. 부패 근절과 정보 자유를 통해 민주주의를 이끈다며 만인이 숭배하는 투명성을 그는 왜 이리 삐딱하게 볼까.

“투명성의 핵심은 ‘즉각’ 볼 수 있게 공개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유의 공간을 없애 정치의 호흡을 짧게 만들어요. 비전과 통찰은 더이상 나오기 어렵고 장기 계획도 못 세우지요. 투명성이 시스템의 안정화와 고착화를 부르는 ‘투명성의 독재’가 나타나는 것이죠.”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쓰지 않는 건 물론이고 휴대전화도 갖고 있지 않다는 그의 눈에는 스마트폰도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디지털 파놉티콘(감시체계)’ 구축에 봉사하는 도구로 비친다고 했다. “누가 안 시켜도 스마트폰으로 SNS에 내 기분 같은 시시콜콜한 정보를 노출하잖아요. 예전에는 고문을 해서 강제로 말하게 하던 것을 이제는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며 자발적으로 말하게 유혹하는 스마트 권력의 고문 도구가 바로 스마트폰입니다.”

한 교수는 이런 투명성은 결국 신자유주의의 요구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연대가 아닌 경쟁으로 생산이 이뤄지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구성원은 경쟁 상대인 서로를 불신할 수밖에 없기에 역설적으로 투명성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는 것. “뒤집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보통 투명성이 신뢰를 만든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실은 불신사회라 투명성이 필요해진 것 아닌가요?”

그는 투명사회가 지향하는 ‘세계의 정보화’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에 초래할 부정적 효과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누군가를 쓰다듬을 때의 느낌이나 미묘한 계절의 변화처럼 세상에는 정보로 환원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죠. 하지만 정보사회에서는 정보가 아닌 것을 놓치게 됩니다. 정보밖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라면 우리는 실제보다 매우 축소된 세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투명성이 구축한 감시사회, 통제사회를 탈출할 방법에 대해 물었다. “우리가 주인처럼 보이지만 실은 디지털 파놉티콘의 수감자이자 가해자라는 것. 자유는 곧 통제로 바뀐다는 ‘자유의 변증법’을 잊지 말아야 해요. 그런 비판적 시각이 바로 자유의 조건입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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