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만 스물이 된 박정환 9단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가 지난해 이세돌 9단(30)을 제치고 5개월 동안 랭킹 1위 자리를 차지했어도 그를 1인자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아직은…”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한국 나이로 성인이 된 그가 자신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이세돌을 넘어서야 한다.
같은 권갑용 문하이지만 10년의 나이차 때문에 함께 지내지는 못했던 선배 이세돌. 남이 하자는 대로 절대로 두지 않는, 자기 색깔이 분명한 바둑을 두는 승부사. 정교한 이론으로 판을 짜기보다는 ‘판을 엎어라’는 그의 책 제목처럼 의표를 찌르는 현란한 변신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천재.
박정환은 포석, 전투, 끝내기와 형세판단 등 모든 부문에 강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지금도 대회 때마다 사활 책을 끼고 사는 공부벌레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그에게는 1인자가 갖춰야 할 그만의 색깔이 없다고 조훈현 국수가 말한 적이 있다.
박정환은 KBS바둑왕전과 맥심배 등 2관왕이고, 이세돌은 삼성화재배와 춘란배, 올레배, 명인전, GS칼텍스배 등 5관왕.
현재 권력과 차세대 권력인 둘이 16일 제14회 맥심배 결승 3번기 1국에서 만났다. 두 기사가 결승에서 정면승부를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 지금까지는 예선이나 본선에서 8차례 만났을 뿐이다. 박정환이 2차례 이기고 6차례 졌다. 박정환은 그때와는 다르다. 이름이 주는 무게도 더 나가고, 2012년 7연패의 아픔도 이겨내는 등 맷집도 좋아졌다.
결승 1국은 박정환이 불리할 것으로 예상됐다. 1국 열흘 전 잉창치(應昌期)배 결승전에서 세 살 어린 판팅위(范廷鈺) 3단에게 3-1로 패하며 우승컵을 내줬기 때문이다. 보통 큰 승부에 지면 내상이 커 후유증이 오래가는 데 바로 이겨냈다.
이날 바둑은 정상들의 대결답게 서로 의도를 거스르는 행마와 대마가 걸린 패싸움으로 불꽃이 튀었다. 박정환은 이세돌의 흔들기에도 정확한 형세판단으로 승리를 이끌어냈다.
박정환은 승리 뒤 “중요 대국(잉창치배)에서 패해 컨디션이 안 좋다. 따로 공부하지 않고 쉬었다. 다음 대국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정환은 이날 승리로 지난해 이 대회에 첫 출전해 내리 6연승으로 우승컵을 거머쥔 데 이어 올해도 지금까지 4연승을 거두며 타이틀에 바짝 다가섰다.
결승 2국은 27일 강릉에서 열리고, 3국은 다음 달 13일 개최된다. 박정환이 처음으로 결승 대결에서 이겨 자신의 시대를 앞당길지, 아니면 이세돌이 “아직은 좀더 단련하라”고 도전을 뿌리칠지 다음 주 아니면 3주 뒤 결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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