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CAR]현대차가 일본차 뛰어넘으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8일 03시 00분


韓日자동차 격세지감

20년 전쯤 일이다. 미국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자형이 현대 ‘쏘나타’를 가지고 왔다. 실내는 베이지색 가죽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차 문을 닫고 앉으면 안전벨트가 자동으로 채워졌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쏘나타와 겉모양은 거의 같았다. 하지만 미국 제품에는 여러 가지 옵션이 추가되어 있었다. 가격도 우리나라 것보다 싸다고 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국 시장은 워낙 크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자형은 15년 전 외환위기 때 도요타 ‘아발론’을 구입했다. 자형의 회사는 외환위기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고 심지어 자형은 승진까지 했다. 그래서 외제차를 샀나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시기에 구입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자동차 회사에서 폭탄 세일을 했다. 경제가 얼어붙으면서 고가의 수입차들은 너도나도 세일을 했고, 사람들은 국산차 가격으로 수입차를 살 수 있었다. 자형은 미국에서 도요타 아발론을 너무 갖고 싶었지만 “‘한국인이라면 한국 차’라는 고정관념을 깰 수 없었다”고 했다. 뒤늦게 ‘드림카’를 손에 넣은 그는 10년 가까이 애지중지하면서 차를 몰았다. 누나도 넓은 그 차를 마음에 들어 했고, 차만 타면 멀미를 하시는 어머니도 “이 차만큼은 괜찮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우리 집에서 ‘도요타’라는 이름은 ‘좋은 차’를 뜻하는 단어가 됐다.

그 당시 일본 차는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성능과 옵션은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디자인이나 인테리어도 유럽 대중차보다 낫다는 평을 들었다. 고장도 거의 나지 않았고 내구성도 뛰어나 오래 타도 새 차처럼 말끔하게 달렸다.

도요타 아발론과 캠리, 혼다 어코드로 대표되는 일본 패밀리 세단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세그먼트다. 값이 싸면서도 차체는 크고 실내가 넓어 많은 사람이 가족과 여행 갈 때 타는 차로 고른다. 원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중고차 가격도 싸지 않은 편이다.

우리나라 차들은 1980년대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부터 이 시장을 타깃으로 삼아 왔다. 일본인들은 비웃었고 미국인들은 무시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어려운 꿈이라고 여겼다. 미국 시장 진출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도요타 캠리는 미국 승용차 시장 판매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혼다 어코드와 닛산 알티마, 포드 퓨전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현대 쏘나타는 5위권이다. 사실상 패밀리 세단의 최하위권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1위와의 격차가 좁혀진 것이다. 호불호가 갈리긴 해도 현대 차 디자인이 일본 것보다 역동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주행 감각이나 안전성, 옵션 등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 일본 차를 타 보면 예전처럼 “우와∼” 하고 놀랄 만한 일이 별로 없어졌다. 국산 차와 느낌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최근 10년 동안 국산 차는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했고 일본차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안주한 것일까. 더이상 아이디어가 없는 것일까. 예전처럼 막강한 존재가 아니다. 조금만 힘내면 뛰어넘을 수 있는 상대가 된 것처럼 보인다.

20년 전, 삼성이 소니를 이길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쩌면 한국 차는 일본 차를 뛰어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 한국 차에 부족한 것은 ‘브랜드에 대한 믿음’이다. 만드는 사람은 최선을 다했고 자랑스러워할지 몰라도 타는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아직 뭔가 부족하다. 세계 명차들의 공통점은 타는 사람은 만족하되 만드는 사람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한국 차가 일본 차를 뛰어넘는 날은 어쩌면 더 빨리 올지 모른다.

신동헌 남성지 ‘레옹’ 부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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