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한 지 보름 만에 관객 400만 명을 넘어선 영화 ‘늑대소년’은 조성희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늑대소년’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달 31일 개봉해 벌써 4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빠져들었다. 소녀적 감수성에만 기댄 유치한 영화라는 혹평도 있지만 ‘송중기 신드롬’과 겹쳐 뜨거운 여심은 식을 줄 모른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카페에서 만난 조성희 감독(33)은 “흥행 성공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여성뿐 아니라 세대를 불문하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그의 장편 데뷔작이다.
어떤 점이 그럴까? “리얼리티에 기반을 둔 작품이 아니죠. 사건의 동기, 캐릭터 등을 만화적이면서도 동화적으로 그렸어요. 이야기에 논리적 구멍이 있더라도 정서를 전하려고 했어요. 잃어버렸던 과거의 순수함 말이죠.”
극 중에서는 1960년대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늑대 소년(송중기)이 폐병에 걸려 요양을 온 소녀(박보영)와 만난다. 소년은 소녀를 통해 인간으로 ‘길들여진다’. “두 사람 관계는 남녀이기 전에 가족이며 친구죠. 예전에 어느 동네에나 늑대 소년 같은 바보 형이 한 명쯤 있었잖아요. 하지만 마을 공동체가 그걸 끌어안았죠. 이런 정서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조 감독은 송중기에게 동네 바보 형이지만 사랑스럽고 로맨틱한 캐릭터를 주문했다. “중기 씨가 동물 전문가에게 늑대의 습성을 자문까지 했어요. 배역에 대한 집요함이 남다른 배우죠.”
2004년 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조 감독의 첫 직장은 애니메이션 제작사. 친구들과 장난삼아 캠코더로 찍은 영상물이 인생을 바꿨다. “맨날 안에 박혀 그림만 그리다가 바깥 공기도 쐬고, (실사) 영화가 참 좋더군요. 하하. 그래서 2008년 영화아카데미에 덜컥 들어갔죠.”
그가 졸업 직후 선보인 단편 ‘짐승의 끝’(2010년)은 파괴적인 상상력이 돋보인 작품. “우리 사회에서 신성시하는 가치들에 던지는 농담이라고 할까요. 천사가 살인을 하고…. 천사와 신의 모습을 경박하게 그려 지구 종말의 분위기를 담고 싶었어요.”
요즘 영화계에서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신인 감독이 없다고 걱정이 많다. ‘포스트 박찬욱, 봉준호’가 없다는 말도 된다. “아카데미 다닐 때 제가 제일 못했어요. 다른 동기들, 대단했습니다. 아마도 이 친구들이 좋은 기회를 잡으면 훌륭한 영화가 나올 겁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