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은 덤… ‘가난의 축복’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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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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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손길 못 미치는 노인들 돕는
강원 원통선교공동체 김병진 신부

10년간 글라렛원통선교공동체를 운영 중인 김병진 신부(가운데 안경 쓴 이)는 “가난한 이웃과 함께 살
다 보면 하느님이 필요한 것은 언제나 채워 준다”고 말했다. 이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는 두 아이를
보듬고 있는 김 신부와 인천교구의 본당신부로 있을 때 만난 신자들이 경로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가
한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글라렛원통선교공동체 제공
10년간 글라렛원통선교공동체를 운영 중인 김병진 신부(가운데 안경 쓴 이)는 “가난한 이웃과 함께 살 다 보면 하느님이 필요한 것은 언제나 채워 준다”고 말했다. 이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는 두 아이를 보듬고 있는 김 신부와 인천교구의 본당신부로 있을 때 만난 신자들이 경로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가 한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글라렛원통선교공동체 제공
“신부(神父)는 무슨? ‘아(아이)’를 많이 낳는 게 꿈이었는데 결혼도 못하는 신부는 무슨 신부!”

강원 인제군에서 시골 폐교를 활용한 글라렛원통선교공동체를 운영하는 김병진 신부(54·글라렛선교수도회). 원래 신부가 될 생각이었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경북 영천이 고향인 그는 사제의 길을 걷기 전에 경북고-서울대 공대-KAIST 석사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 등 5개 언어를 구사한다. 성직자에게 신부나 스님이 된 이유를 묻는 것은 금기다. 하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해 물었더니 그는 30여 년 전 대학 시절 친구와 나눈 꿈 얘기를 꺼냈다.

“기숙사를 같이 쓰던 물리학과 동기는 신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난 결혼도 하고 나중에 교수나 기업가가 되겠거니 했죠. 근데 그게 바뀌었어요. 인생이 그래요, 하하.”

그는 2001년 산골이 깊어 ‘인제 가면 언제 올꼬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넋두리로 유명한 원통에 자리 잡았다. 서울∼춘천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서울에서 2시간이면 도착하니 이제 옛말이 됐다. 정확하게는 원통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원통초등학교 효자분교다.

“산업공학이 전공이라 1984, 85년 KAIST에서 요즘 유행하는 벤처캐피털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눈앞에 안정된 길이 보이는데도 마음이 계속 허했어요. 점점 하느님의 ‘꼬임’이 달콤해졌어요. 결혼도 못하고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자다 벌떡벌떡 일어났어요. 근데 결국 졌죠.(웃음)”

사제의 길을 결심한 그는 1992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것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다.

그는 유학 중이던 1996년 급히 로마에서 귀국해 영천성당에서 어머니 장례미사를 직접 집전했다. “눈물도 나지 않고 편안하게 미사를 집전했어요. 신자들은 이럴 때 더 좋은 나라로 이사 갔다고 말해요.”

10년간 선교공동체를 운영한 그는 영락없이 편한 옷차림에 사람 좋은 웃음이 가득한 원통 촌사람이다. 폐교에 들어서자 봄날 햇볕을 쬐던 두 마리 개, 장구와 징이 달려와 꼬리를 흔든다.

그가 말하는 청춘과 사제의 길에 이어 마지막 인생 3막의 무대는 농촌이다. 가정을 직접 찾는 재가복지(在家福祉)에 힘쓰면서 규정 때문에 정부 복지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인들을 돕고 있다.

“요즘 자식들이 떠나 버린 농촌 노인들이 겪는 소외감과 상실감은 상상을 초월해요. 그분들이 원하는 것은 말벗과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목욕, 얼마나 원초적입니까.”

김 신부는 한 주에 3회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온천효도관광을 진행하면서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찾아 말벗이 되고 있다. 매년 늦가을에는 1000포기 이상의 김장을 담가 주민들과 나누는 등 지역공동체의 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1999년 급성 소장 괴사로 소장 6m 중 4m를 잘라내 한때 죽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어찌 보면 지금 내 인생은 덤이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합니다. 선교는 나중 얘기죠? 인간답고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해요. 이곳에서 ‘가난의 축복’이라는 말의 의미를 새삼 느낍니다. 부족하면 꼭 도움의 손길이 찾아옵니다.”

인제=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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