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애들 장난감? 아트토이는 20~30대 키덜트들 애완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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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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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토이 수집 열풍

슈퍼맨 복장, 꿀벌 모양 등 다양한 디자인의
베어브릭들. 킨키로봇 제공
아이돌 그룹 ‘빅뱅’의 멤버 ‘탑’. 얼마 전 일본 공연을 마친 뒤 인천공항에 들어서는 그의 손에는 곰 모양의 커다란 빨간색 플라스틱 인형이 들려 있었다. 이 인형의 이름은 ‘아트토이’의 대명사인 ‘베어브릭(bearbrick)’. 1000개가 넘는 베어브릭을 소장한 마니아로 소문난 탑은 베어브릭의 원산지인 일본에 갈 때마다 짬을 내 하나둘씩 구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트토이는 ‘플랫폼’이라고 불리는 같은 모양, 다른 크기의 플라스틱 인형에 아티스트나 디자이너의 그림을 입히거나 디자인에 일부 변형을 가한 인형류를 통칭하는 용어다. 아트토이의 유래는 홍콩의 가난한 미술가들이 순수미술로 생계 유지가 어렵게 되자 ‘퀴(QEE)’라는 곰 모양 플라스틱 인형에 자신들의 디자인을 입혀서 팔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이후 일본의 완구회사 메디콤이 베어브릭이라는 곰 모양 인형을 출시하면서 히트를 쳤고, 미국의 키드로봇이란 회사도 ‘더니’라는 아트토이를 내놓으면서 이 셋은 국내에서 인기가 가장 높은 ‘아트토이 삼총사’로 자리를 잡게 됐다.

○ 장난감과 사랑에 빠진 키덜트

아트토이는 다양한 패션 아이템의 디자인 소재로도 활용된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제일모직 꼼데가르송 플래그십 스토어에 전시된 베어브릭 피겨와 베어브릭 이미지를 활용한 핸드백, 티셔츠 등.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아트토이는 다양한 패션 아이템의 디자인 소재로도 활용된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제일모직 꼼데가르송 플래그십 스토어에 전시된 베어브릭 피겨와 베어브릭 이미지를 활용한 핸드백, 티셔츠 등.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형이라고 ‘아이들 장난감 아냐?’ 하고 우습게 봤다간 오산이다. 개당 가격이 몇만∼몇십만 원에 이르고 매 시즌 새로운 디자인이 쏟아지다 보니 몇 개만 소장해도 지출은 금세 수십만∼수백만 원에 이른다. 아트토이가 키덜트(아이를 뜻하는 키즈와 어른을 뜻하는 어덜트의 합성어)들의 장난감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터넷 아트토이 커뮤니티인 ‘키덜츠’의 창립자 김영웅 씨(30)는 “동호인 중에도 직장생활을 하는 30대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며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독특한 구입 방법도 아트토이만의 매력 가운데 하나다. 대표적인 것이 ‘블라인드박스’라는 구매방식. 옛날 학교 앞 문구점의 ‘뽑기’처럼 어떤 디자인의 아트토이가 들어있는지 모르는 채로 여러 상자 중에서 무작위로 하나를 골라 구매하는 블라인드박스 구매야말로 아트토이를 구입하는 ‘손맛’을 제대로 누리는 방법이다. 상자 겉에는 상자 안에 들어있는 아트토이의 경우의 수 정도만 그림으로 설명돼 있을 뿐 개봉하기 전까지는 어떤 색상, 어떤 디자인의 제품이 들어있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에 구매자의 운이 중요하다.

아트토이 애호가들은 수집뿐 아니라 전시에도 각별한 정성을 기울인다. 박물관처럼 아예 방 하나를 통째로 아트토이 전시 용도로 사용하거나 인형에 먼지가 묻지 않게 아크릴케이스 등을 씌우는 일도 다반사다. 최영헌 씨 제공
아트토이 애호가들은 수집뿐 아니라 전시에도 각별한 정성을 기울인다. 박물관처럼 아예 방 하나를 통째로 아트토이 전시 용도로 사용하거나 인형에 먼지가 묻지 않게 아크릴케이스 등을 씌우는 일도 다반사다. 최영헌 씨 제공
지금까지 1000개가 넘는 퀴를 수집한 아트토이 동호인 최영헌 씨(26)는 “돈이 많으면 전시된 물건을 미리 보고 값을 지불하는 ‘오픈박스’ 방식으로도 구입할 수 있지만 운만 좋으면 싼값에 희소성 있는 제품을 손에 쥘 수 있는 블라인드박스 방식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자를 여는 짜릿한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킨키로봇’(온·오프라인숍)과 ‘아트앤토이즈’나 ‘퍼니펄스’, ‘마블숍’(이상 온라인숍) 등이 아트토이를 살 수 있는 대표적인 구매창구다.

○ 희귀 아이템은 주식 못잖은 투자효과

블라인드박스 방식으로 구매할 때 좀체 나오지 않는 희귀한 디자인의 제품은 동호인 사이에서 ‘시크릿’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높고 소장자들도 부러움 반 시샘 반의 시선을 받게 된다. 프랭크 코직, 어맨다 비셀 같은 해외 유명 아티스트가 디자인한 아트토이는 동호인들 사이에서 프리미엄을 붙여 거래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는다. 희귀한 아트토이 수집이 웬만한 우량 주식 못지않은 투자 효과가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인기가 많은 아트토이는 다양한 패션 소품의 디자인 소재로도 활용된다. 제일모직의 패션브랜드 꼼데가르송은 최근 일본 메디콤사에서 제작한 대형 베어브릭 인형을 전시했고, 이달까지 베어브릭 이미지를 새긴 핸드백, 티셔츠 등을 판매한다.

도기로 만든 인형을 캔버스 삼아 유성펜으로 색칠한 ‘셀프 아트토이’. 카페 無’stoy 제공
도기로 만든 인형을 캔버스 삼아 유성펜으로 색칠한 ‘셀프 아트토이’. 카페 無’stoy 제공
과거에 비해 많이 대중화됐다고는 하지만 가족이나 배우자의 눈에 아트토이 수집은 여전히 다 큰 어른이 헛돈 쓰는 일로 오해받곤 한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번에 아트토이를 대량으로 매도하고 싶다는 글이 오르면 십중팔구 결혼을 계기로 그간의 소장품을 눈물을 머금고 처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게 동호인들의 설명이다.

아무런 디자인을 입히지 않은 순백의 ‘누드’ 아트토이에 유성펜 등으로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직접 입히는 동호인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외국에서 인기가 많은 아트토이 ‘머니(MUNNY)’ 등이 대표적으로, 아예 물감과 인형을 묶어 세트로 파는 경우도 많다.

홍익대 인근의 아트토이 카페 無’stoy에서는 도자기 소재로 만든 순백의 인형을 캔버스 삼아 유성펜으로 그림을 그려 넣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나만의 인형이 손끝에서 탄생하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따끈한 커피 한잔과 인형에 색을 입히는 체험이 포함된 가격이 5000원. 1만5000원을 내면 자신의 작품을 가지고 갈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두고 간 작품을 구입해도 된다. 이 카페 김학현 대표는 “주말이면 연인이나 가족 단위로 30팀이 넘게 와서 인형 제작 체험을 한다”며 “외국인들도 신기해하며 인형을 사 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베어브릭에 빠져 노래도 만들었죠”▼
인디 힙합 뮤지션 ‘팻두’

인디 힙합 뮤지션 ‘팻두’와 ‘베어브릭 인 러브’ 음반.
인디 힙합 뮤지션 ‘팻두’와 ‘베어브릭 인 러브’ 음반.
노래를 부르지 않았어도 ‘노래를 부른다’고 표현할 때가 있다. 예컨대 아이스크림을 너무 좋아해서 사달라고 심하게 조르면 ‘아이스크림 사 달라고 아주 노래를 부르더라’라고들 한다. 그런데 아트토이에 빠져서 정말 노래를 만들고 음반까지 낸 가수가 있다. 주인공은 인디 힙합 뮤지션 ‘팻두(FATDOO·이두환 29)’. 그는 14일 ‘베어브릭 인 러브’라는 음반을 발표했다.

그가 베어브릭의 매력에 홀딱 반해 버린 것은 지난해 겨울 일본 여행이 계기가 됐다. 일본 여행 도중에 베어브릭을 100만 원어치나 구입한 것. “처음엔 베어브릭의 고향인 일본이 한국보다 제품 가격이 싸기에 한국에 가져와 되팔면 돈이 되겠다 싶었는데, 막상 귀국해서 제가 사온 베어브릭을 보고 있자니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도저히 팔지 못하겠더라고요.”

베어브릭과의 연애에 빠진 감정을 담아 그는 6주 만에 베어브릭을 소재로 한 노래 6곡을 만들어 CD를 3500장이나 만들었다. 깜찍한 베어브릭 두 마리가 나들이를 떠나는 음반 표지사진도 아트토이 동호인이 찍어줬다. 그의 음반은 현재 아트토이 판매점인 ‘킨키로봇’에서 베어브릭을 구매하는 고객에게 무료로 배부되고 있다. “이 음반으로 돈을 벌 생각은 없어요. 음반 배부를 맡아 준 아트토이 판매점에서 베어브릭을 60여 개나 선물해주셨으니 그걸로 제겐 충분한 보상이 됐습니다.”

앨범에 수록된 노래를 천천히 음미해보니 아트토이 애호가들의 귀에만 들리는 ‘전문용어’ 가사가 수시로 등장한다. ‘써모와 소풍가는 날’(5번 트랙)이란 곡의 주인공 ‘써모’는 주변 온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특수소재로 만든 베어브릭의 애칭이다. ‘시크릿 슈퍼맨, 내일은 내가 진짜 뽑고 만다’라는 가사가 귀에 쏙쏙 꽂히는 ‘망가진 슈퍼맨’(2번 트랙)이란 곡은 슈퍼맨 모양의 희귀한 베어브릭을 블라인드박스 구매방식으로 뽑을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원래 ‘호러뮤직’이란 어두운 장르로 음악 활동을 했던 그인지라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의 이번 앨범에 대해 ‘음악적 외도’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는 팬들도 있다. “어두운 면과 밝고 따뜻한 면 모두 제 내면의 모습이니까요. 의아해하던 팬 중에도 이번 앨범 덕분에 아트토이 수집을 시작한 분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면 음악의 힘이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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