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을 e북으로… ‘북스캔’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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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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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대행업, 日이어 한국서도 인기… 매달 300% 성장하는 업체도 등장

그래픽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그래픽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28세의 유수키 오키 씨. 도쿄에 있는 아파트를 채우던 책 2000권을 스캔해서 아이패드에 넣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이 청년은 직원 120명과 함께 고객들을 위해 책을 스캔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유수키 씨의 사례를 들며 일본의 책 스캔 시장을 소개했다. 유수키 씨가 개인 경험을 토대로 세운 회사는 ‘북스캔’. 고객이 맡기는 종이책을 킨들, 아이패드, 아이폰 등에서 볼 수 있도록 PDF파일로 변환해준다. 지난해 5월 일본에서 아이패드가 발매된 이후 스캔 대행업체는 60여 개로 늘었다.

짧은 기간에 북스캔 대행업이 크게 발달한 것은 전자책 콘텐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일본의 출판사들이 전자책을 적극적으로 내지 못하는 것. 시장조사 전문가 도시히로 다카기 씨는 “출판사들이 시장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니까 소비자들이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새로운 트렌드가 한국에도 상륙했다. 작년 10월을 전후로 아이북스캔, 도큐스캔, 북스캔넘버원 등 책 스캔 업체가 등장했다. 아이북스캔의 경우 10월 서비스 개시 이후 매달 300% 이상 성장세를 보이며 호응을 얻고 있다. 북스캔 업체의 성장은 갤럭시탭, 아이패드 등 태블릿PC가 작년 하반기에 출시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전자책 단말기는 많이 보급되는데 콘텐츠는 부족한 현실을 북스캔 업체가 채워주고 있는 형태다.

미국의 경우 이런 서비스를 찾아보기 어렵다. 아마존의 전자책 판매량이 종이책을 앞지를 정도로 콘텐츠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출판사들이 전자책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동안 북스캔 대행업이 등장하는 등 미국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자책 시장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송기현 아이북스캔 고객팀장은 “책을 스캔하는 고객은 보고 싶은 전자책 콘텐츠를 구하지 못해 직접 만들려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아이북스캔 홈페이지에 이용 후기를 올린 한 이용자는 “아이패드 사용자인데 국내 전자책 시장에는 쓸 만한 책이 그다지 없다”고 밝혔다.

업체들이 제공하는 책 스캔 서비스는 대체로 비슷하다. 주문자는 우선 스캔 신청을 한 뒤 스캔할 책을 택배로 보낸다.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한 책의 배송지를 스캔 업체로 정해서 곧바로 보내는 경우도 있다. 업체는 책을 낱장으로 나눈 뒤 스캐너를 이용해 PDF파일로 변환한다. 업체가 서버에 파일을 올리면 주문자는 홈페이지를 통해 해당 파일을 내려받은 뒤 PC, 전자책 단말기, 태블릿PC, 스마트폰 등에 담아서 본다. 이용료는 페이지당 10원 정도다.

책 스캔 서비스 이용 목적은 다양하다. 우선은 읽고 싶은 책을 전자책 형태로 보겠다는 사람들이다. 김재환 도큐스캔(Docuscan) 대표는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같은 신간을 신청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집에 쌓여 있는 책을 스캔해서 ‘디지털 서가’로 전환하려는 이용자도 있다. 송 팀장은 매주 10권씩 꾸준히 의뢰해 오는 고객도 있다며 “법학, 의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두꺼운 전공서적을 전자책으로 보관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최근 책 한 권을 전자책으로 변환한 회사원 임택규 씨(42)는 “한국의 책은 종이 질이 너무 좋아서 대체로 무겁다. 그런 이유로 집에 장식용으로만 쌓여 있는 책을 하나씩 스캔해서 PC나 태블릿PC에 담을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유학이나 이민으로 외국에 나간 사람들의 이용도 늘고 있다. 도큐스캔에는 브라질, 베트남에 있는 교민들이 한국 집에 남겨 놓은 책을 보내 스캔을 의뢰한 사례도 있다.

책 스캔 서비스의 한 가지 걸림돌은 저작권이다. 내부 직원의 파일 유출을 막는 것은 사규로 다스릴 수 있지만 문제는 고객이다. PDF파일을 유통시켜도 막을 수단이 업체로선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업체들은 변환한 파일을 주문자만 이용하도록 권고하고 보조장치도 마련하고 있다. 아이북스캔의 경우 변환된 파일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름, e메일 주소, ID 등 주문자의 정보를 명기해 불법 유통될 경우 출처가 드러나도록 했다. 또 다른 업체는 다운로드 횟수나 기간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불법 유통에 대처하고 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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