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아랫목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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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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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집, 박현숙 그림 제공 포털아트
사랑의 집, 박현숙 그림 제공 포털아트
겨울 들어 자주 눈이 내리고 여러 날 한파가 계속됩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의 어깨가 한껏 움츠러들고 걸음이 빨라집니다. 나이 든 사람은 서둘러 귀가하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뭔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절절 끓는 아랫목이 그립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보일러를 아무리 가동해도 느껴지지 않는 추억의 온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정감의 결핍에 겨울밤이 한없이 길게 느껴집니다.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는 온돌문화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구들장을 달구고 절절 끓는 아랫목에 모여앉아 가족끼리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고 고구마나 밤을 까먹는 정겨움을 모릅니다. 아버지가 늦게 오시면 어머니는 밥상을 차려 상보로 덮어두고 밥그릇은 아랫목 이불 속에 묻어두시곤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간장 된장 고추장의 원료가 되는 메주도 아랫목에서 말리고 콩나물을 키우는 시루도 아랫목에 두고 물을 부어가며 뿌리가 자라나게 했습니다. 전통음료인 식혜도 아랫목에서 삭혔으니 우리 선조가 창출한 온돌문화는 참으로 많은 것을 무르익게 하고 자라나게 한 근원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조상이 겨울나기를 위해 만들어놓은 온돌문화는 지금 찜질방 문화로 살아나 간신히 명맥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상실한 가정적 온돌문화는 상업화된 찜질방 문화와 근원적으로 다릅니다. 가족 간의 따뜻한 유대와 이웃과의 정겨운 교류가 모두 아랫목 문화에 뿌리를 두기 때문입니다. 아파트에서의 입식문화는 편의성과 세련된 삶의 양식을 제공했을지 모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적 정분을 잃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1세기, 현대인은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디지털 유목민으로 세상을 누빕니다. 앉은 자리에서 인터넷으로 세계와 실시간적으로 교류하고 화상으로 시공을 뛰어넘는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하지만 밤바람이 창을 흔들고 가는 한겨울 밤, 무심하게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다가 문득 혼자인 자신을 자각할 때가 있습니다. 대화도 단절되고 소통도 단절된 일인만능주의 시대에 엄습하는 그 깊은 망연자실함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예전의 어머니는 아랫목에서 아이를 낳고 아랫목에서 산후조리를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정서적 자궁은 아랫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현대를 살아가면서 무의식중에 느끼는 단절감 고독감 소외감도 바로 온돌로 따뜻하게 데워진 아랫목 문화를 상실한 데서 기인한 것인지 모릅니다.

박목월 시인은 ‘가정’이라는 시에서 ‘아랫목에 모인/아홉 마리의 강아지야./강아지 같은 것들아./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내가 왔다./아버지가 왔다’고 노래했습니다. 자식을 위해 아랫목을 배려하는 아비의 윗목마음이 아리게 와 닿는 시입니다. ‘장작 군불을 때면 쩌글쩌글 밤새도록 끓던 아랫목, 식구들 둥글게 앉아 동치미 국물로 찐 고구마 먹던 아랫목, 이불 속 가운데 모인 발 간질이며 들썩거리던 그 뜨거운 아랫목’이 그립다고 노래한 배한봉 시인도 있습니다. 아랫목 없는 아파트살이, 아랫목 정서를 상실한 세상살이, 우리 모두 한파를 견디며 잃어버린 마음의 아랫목을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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