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을 따라 걷다 경북 안동시 병산서원 근처에서 쉬고 있는 신정일 씨. 그는 “아픈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는 김수영 시인의 시를 자주 읊는다. 사진 제공 신정일 씨
얼굴은 검었고 개량 한복 소매 사이로 보이는 검은 팔뚝은 탄탄해 보였다. 작은 배낭을 짊어진 채 옮기는 발걸음은 가벼우면서도 야무졌다. 1일 동아일보 일민라운지에서 만난 신정일 씨(56)는 25년 동안 전국의 산과 강, 길을 누비며 얻은 건강 때문인지 생기가 넘쳤다.
문화사학자로서 우리 땅을 걸으며 만나는 삶과 역사를 50권에 가까운 책으로 펴내 온 그가 이번에 ‘신정일의 신 택리지’(타임북스) 3권을 한꺼번에 냈다. 총론에 해당하는 ‘살고 싶은 곳’ 편과 경상도 편, 전라도 편이다. 올해 말까지 서울, 경기, 충청, 강원, 제주, 북한, 팔도총론, 택리지 해서 등 신 택리지 시리즈로 총 10권을 낼 예정이다. 2004년에 펴낸 ‘다시 쓰는 택리지’(총 5권)를 대폭 수정한 것이다.
그의 책은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1690∼1756)의 ‘택리지’(1751년)를 기본 골격으로 삼았다. 택리지를 쓰기 전 20년 동안 전국을 누빈 이중환은 지리에 대해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인간생활에 있어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학문인 동시에 삶의 지혜이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기술’이라고 했다. 이중환과 생각을 같이 한 저자는 한강 낙동강 섬진강 등 10대 강과 영남대로 삼남대로 관동대로 등 우리 옛길, 400여 개의 크고 작은 산을 두 발로 일일이 답사했다.
왜 그토록 걷느냐는 질문에 그는 “걸으면서 만나는 사람과 유물, 역사를 대하다 보면 결국 나를 돌아보게 된다”고 답했다. 걷기는 결국 자신을 성찰하고 찾아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중환이 약 250년 전 전국을 누빈 것은 결국 사람들이 살 만한 곳이 어디인가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며 이중환이 기준으로 삼은 조건은 지리(땅의 모양) 인심(이웃 인정) 생리(토산품) 산수(풍광) 등 4가지였다고 소개했다.
250년의 시차 때문에 각 지방의 풍속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왜구의 침입으로 살기 어려운 곳이었던 해안가가 이제는 어업 기술과 무역 등의 발달로 좋은 풍광을 갖춘, 살기 좋은 곳으로 여겨진다.
이중환의 예전 기준을 오늘날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산수가 빼어나고 물과 공기가 좋은 곳을 이상향으로 두기는 현대인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여긴다.
“제가 운영하고 있는 우리 걷기 답사 모임의 3분의 1 정도 회원이 서울 강남에 살고 있습니다. 마음속 이상향을 찾아 주말에만 자연으로 다가가는 것이죠.”
오래 보면 정이 생긴다고 했던가. 그는 우리 땅과 사랑에 빠졌다. ‘그녀’가 아파할 때 고쳐줬다. 구미의 유명한 옛길이 자유경제구역 지정으로 없어질 뻔한 것을 보고는 곳곳에 편지를 보내 옛길을 살리는 방향으로 개발의 방향을 바꿨다.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지는 습지에 대해서는 ‘그녀’의 웃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는 것처럼 안타까워했다.
아이디어도 넘쳐난다. “요즘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많이 가는데, 검룡소에서 김포까지 한강을 따라 걷는 길에 인증을 하면 산티아고 못지않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것”이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그에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어디냐고 물었다. 그는 “이중환 선생도 택리지에서 말했지만 모든 조건을 갖춘 완전한 곳은 없다”고 했다. “완전하지는 않아도 부족한 부분을 고쳐가면서, 자기가 사는 곳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면서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