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894>齊人이 歸女樂이어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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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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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微子(미자)’편의 제4장은 공자가 魯(노)나라의 司寇(사구) 직을 그만두고 노나라를 떠나게 된 이유를 알려준다. 공자가 사구로서 재상의 일을 겸행하자 제나라는 노나라가 覇權(패권)을 쥘까 봐 나라의 정치를 훼손시키려고 80명의 미녀 악단을 보냈다. 노나라 上卿大夫(상경대부)인 季桓子는 악단을 받아들여 酒樂(주악)에 耽溺(탐닉)하고 노나라 군주 定公(정공)과 함께 朝廷(조정)의 정치를 사흘이나 중단했다. 공자는 道(도)를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구 직을 사직하고 노나라를 떠났다고 한다.

歸는 드릴 饋(궤)와 같다. 女樂은 음악과 무용을 하는 여성을 말한다. 공자는 定公 때 中都(중도)의 宰(재)로부터 司空(사공)이 되고 다시 大司寇(대사구)가 되었으며 제나라와 夾谷(협곡)에서 회합을 할 때 나라의 위신을 세웠다. 또 악독한 대부 少正卯(소정묘)를 죽였으며 마침내 재상의 직무를 겸하였다. 이때 제나라는 미녀 80명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康樂(강악)에 맞춰 춤을 익히게 하고는 좋은 말 120필과 함께 보내어 曲阜(곡부)의 성 밖에 정렬시켰다. ‘사기’ ‘孔子世家(공자세가)’에 나온다.

계환자와 정공이 정치를 소홀히 하자 공자는 노나라를 떠나려고 결심하되 당장 떠나게 되면 군주의 현명하지 못함을 온 천하에 공표하는 셈이 되므로 떠날 기회를 엿보았다. 얼마 뒤 郊祭(교제)가 거행된 후 정공이 대부들에게 희생의 고기를 나누어주어 오던 慣例(관례)를 지키지 않자 공자는 재상의 일을 대행하는 자신의 책임이라 하면서 마침내 노나라를 떠났다. 이 역시 ‘공자세가’에 나온다. 出處進退(출처진퇴)의 자세를 현대의 정치가는 배워야 하리라.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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