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죽음을 선택한 자의 짙은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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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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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죽음/장 아메리 지음·김희상 옮김/283쪽·1만5000원·산책자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시지프스의 신화’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세계가 부조리한가 아닌가에 대한 질문을 만일 세계가 부조리하다면 그에 대한 저항으로서 자살을 택하느냐 마느냐의 절박한 실존의 문제로 바꾼다. 그리고 세계가 부조리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저항으로서 자살이 아닌 생을 택하는 것이 더 영웅적 태도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카뮈와 동시대인으로 실존주의적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이 책의 저자(1912∼1978)는 그런 인식론적 비약을 거부한다. 그는 자살을 비판하는 수많은 책이 치욕스러운 좌절과 냉혹한 실패를 겪은 자살자의 ‘뛰어내리기 직전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자살이야말로 살아있는 존재의 끈질긴 자기보존 충동에 맞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장 급진적이고 생생하게 실행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살(suizid)이란 표현 대신 자유죽음(freitod)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저자는 우리의 인생을 “냉혹한 존재에게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언젠가 다시금 존재에게 뒷덜미를 잡히고 마는 자유사냥”에 비유하면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몰이사냥을 자신의 결단으로 끝내버리는 게 자유가 아닐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한발 더 나아가 죽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선택한다는 점에서 자유죽음이야말로 ‘자유의 완성’일 수 있다는 사유를 펼친다.

이 책을 어설픈 자살찬미론으로 오독해선 안 된다.

지옥과 같은 삶을 견뎌냈지만 결국 죽음을 선택한 인간의 짙은 고뇌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유대인 출신의 독문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저자는 나치 독일에 저항해 레지스탕스 운동을 펼치다 체포돼 게슈타포의 고문과 아우슈비츠의 야만을 이겨낸 생존자다. 그 후유증으로 모국어와 본명(한스 차임 마이어)을 버리고 여생을 스위스에서 망명자로 살았던 그는 이 책을 발간하고 2년 뒤인 1978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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