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joy]K2와 함께하는 알파인 등반 체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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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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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올랐느냐는 전혀 중요치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떻게 올랐느냐’는 것이다. 자신의 힘만으로 올라야 한다. 인공등반장비는 최후의 선택일 뿐이다. 제발 당신이 오른 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마라. 당신은 그냥 그곳을 스쳐 지나간 사람일 뿐이다. 당신 뒤에 오르는 사람도 마치 그곳을 초등하듯 오를 수 있도록 내버려둬야만 한다.”

<미국 산악인 게리 헤밍(1933∼1969)>

“바위에 오르는 것은 소년이 맨발로 나무에 오르는 것과 같다. 즐거운 놀이일 뿐, 새롭고 흥미로울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이 놀이에도 지켜야 할 윤리가 있다. 난 최고의 등반가가 되려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더욱 훌륭한 목표는 ‘우정’과 ‘즐거움’이다.”

<미국 거벽의 철학자 로열 로빈스(1935∼)>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 남쪽의 루팔 벽은 그 높이가 무려 4500m나 된다. 68도에 이르는 경사 때문에 머리 부분엔 눈이 쌓이지 않는다. '벌거벗은 산(낭가파르바트)‘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낭가파르바트 서쪽의 디아미르 벽도 3500m나 된다. 안나푸르나 북서벽은 4000m, K2 남쪽 암벽은 3200m에 이른다, 유럽 알프스 몽블랑 수직벽은 3960m에 달하고, 석회암인 아이거수직북벽은 1830m의 높이로 우뚝 서있다. 미국 요세미티 계곡의 거대한 화강암절벽 엘 캐피탄의 수직 바위는 1086m 높이다.

1953년 7월 2일 오전 2시 20분. 세계적 등반가 헤르만 불(1924∼1957·오스트리아)은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8125m)의 마지막 캠프(6918m)를 박차고 나갔다. 날씨는 맑았다. 그는 7500m 지점에서 거추장스러운 산소통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발걸음을 빨리했다. 7월 3일 오후 7시 그는 마침내 정상에 섰다. 인류 역사상 첫 8000m급 봉우리 41시간 무산소 단독 등정. 그때까지 31명의 등반가들이 이곳을 오르려다가 목숨을 잃었다. 당시 학자들은 ‘인간이 산소통 없이 8000m 이상의 고지를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었다.

1978년 라인홀트 메스너(1944∼·이탈리아)는 혼자서 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를 올랐다. 그때까지 25개 팀이 에베레스트를 올랐지만 그것은 모두 ‘벌떼 작전’ 즉 극지법(고정로프를 설치하고 여러 개의 캠프를 구축)으로 오른 것이었다. 그 팀들은 모두 등반가와 셰르파를 합쳐 30명이 넘었다. 산소통은 필수장비였다. 언론은 “이제야 비로소 인간의 힘으로 에베레스트에 처음 올랐다”고 평가했다. 메스너는 1970년 낭가파르바트 초등 이후 1986년 로체봉까지 올라 세계에서 처음으로 히말라야 14좌에 올랐다. 그는 14좌에 오르는 16년 동안 거의 무산소 단독 등반을 고집했다.

예지 쿠크츠카(1948∼1989·폴란드)는 1979년 로체봉에서부터 1987년 시샤팡마까지 8년 만에 세계 두 번째로 14좌에 올랐다. 14좌 중 10좌는 남이 가지 않은 새 루트로, 4좌는 눈사태가 밥 먹듯이 이뤄지는 겨울에 올랐다. 안나푸르나 남벽에 새 길을 개척한 것도 바로 그였다.

헤르만 불이나 메스너 그리고 쿠크츠카는 가장 어려운 루트를 선택했고, 산소통의 도움 없이 오르고자 했으며, 단독 등반을 시도했다. 메스너는 ‘미치광이’ ‘자살미수자’라고 불릴 정도였다. 헤르만 불은 초콜리사산에 도전하다가, 쿠크츠카는 로체남벽에서 새로운 루트를 뚫다가 죽었다.

산은 왜 오르는가. 인간이 산꼭대기에 오르는 순간, 산은 정복되는 것인가. 아니다. 파리가 잠시 황소 뿔에 앉았다고, 황소가 파리에게 정복된 것인가. 산에게 인간은 잠시 스쳐가는 바람일 뿐이다. 극지법 등반은 정상 정복의 개념이다. 벌 떼처럼 달려들어 포위 섬멸하는 거와 같다. 1954년 K2를 ‘정복’한 이탈리아원정대는 무려 600명의 포터를 고용했다. 포터 한 사람이 30kg씩 짐을 진다면 무려 18t의 식량 장비가 운반된 셈이다.

알파인 스타일 등반은 고정 로프가 없다. 단 한 번에 정상까지 오른다. 셰르파가 없고 등반인원도 6명을 넘지 않는다. 산소통을 쓰지 않고, 사전 정찰 따위도 하지 않는다. 로프도 1, 2동만 사용해야 한다. 초경량 속공 등반이다. 베이스캠프를 떠나면 전진캠프도 없이 곧바로 오른다. 잠은 암벽에 매달리는 비박으로 대충 때운다.

로열 로빈스의 놀이터는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이다. 그는 1957년 하프 돔 북서벽 초등, 1964년 엘캐피탄 노스 아메리칸 월 초등, 1968년 엘 캐피탄 단독 초등을 해냈다. 그는 남이 박아놓은 요세미티 다운 월 300개 볼트를 모조리 빼버렸다.

메스너는 말한다. “정상이란 반드시 산의 꼭대기가 아니다. 하나의 종점이고 모든 선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 지점은 적어도 한 세계가 ‘무(無)’로 바뀌는 곳이다. 모든 것이 완결되는 끝이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것은 ‘정복이 아니라 존재를 위한 것’이다.”

인간은 저마다 ‘자신만의 삶의 길’이 있다. 산에 오르는 길도 수없이 많다. 북한산 인수봉(810.5m)엔 바윗길이 60여 개가 있다. 도봉산 선인봉엔 40여 개의 루트가 있다. 미국 요세미티 계곡의 거대한 화강암 절벽 엘 캐피탄(2695m)에도 1000개가 넘는 길이 있다. 모두 ‘남이 가지 않은 길’을 향한 인간의 몸부림 흔적이다.

“암벽등반, 팔보다 다리 힘으로”… 오를 땐 후들, 하강 땐 짜릿

천신만고 끝에 오른 바윗길이, 막상 하강할 땐 순식간이다.
천신만고 끝에 오른 바윗길이, 막상 하강할 땐 순식간이다.
지난달 29일 대둔산 ‘구조대릿지 루트’에서 열린 ‘K2와 함께하는 알파인스타일 등반체험’. 바윗길 난이도는 대부분 5.7에서 5.9 사이. 가장 어려운 코스가 5.10c의 한둔바위였다. 박윤정 대한산악연맹 등산강사와 대전산악구조대원들이 바윗길 주요 지점마다 지키고 있다가 도움을 주었다. 초보자들에게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초보는 역시 초보였다. 귀가 아프도록 들은 주의사항이지만, 막상 바위를 타는 순간 까마득히 잊었다.

“바위는 손이 아니라 발로 탄다. 발 디딤이 먼저다. 평지를 걷듯이 오른발 왼발 자연스럽게 놓으면 된다. 손에만 힘주면 대롱대롱 매달리게 된다.” “추락할 땐 줄을 잡지 말고 자연스럽게 놓아라. 줄만 잡고 있으면 몸이 빙빙 말리다가, 얼굴을 바위에 부딪쳐 다친다.” “확보 줄은 생명줄이요 탯줄이다. 자나 깨나 확보 줄을 확인하라.”

산 아래엔 발그레한 단풍이 비단처럼 깔려 있었다. 장난감 집들이 오종종 발아래 걸렸다. 바로 눈앞에 버티고 서 있는 병풍바위는 무채처럼 세로로 쭉쭉 칼질이 나 있었다. 그 틈새엔 구불퉁한 소나무들이 안간힘을 하고 서 있었다. 까마귀들이 날개를 우아하게 펴고 훠이훠이 맴돌았다.

초보 바위꾼들은 낑낑대고, 입을 앙다물고,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한 땀 한 땀 기어올랐다. ‘몸을 접었다 폈다’ 한 마리 ‘인간 자벌레’가 되었다. 밑은 아득한 천길 낭떠러지. “저 길을 어떻게 지나왔던가!” 바위 등짝은 따뜻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 소낙비가 우수수 흩날렸다.

‘자벌레는 한 발자국이 몸의 길이다/한 발자국을 떼기 위해 온몸을/접었다 폈다 한다/자벌레라 불리지만 거리를 재지도/셈을 하지도 않는다/…/한 발자국이 몸의 길이인 자벌레는/모자라는 것도 남는 것도/모두 다른 몸의 것이라 생각하며/몸이 삶의 잣대인 자벌레는/생각도 몸으로 하기 때문이다’ <구광렬 ‘자벌레’>에서

회사원 민수연 씨(42)는 “점심을 못 먹어 지쳤었나보다. 마지막 수직 벽에선 다리에 힘이 빠져 거의 반은 끌려 올라가다시피 했다. 손으로 매달려서 올라갔다. 강사 분들께 감사하다. 하지만 하강할 땐 참 재밌고 신났다. 바위에서 내려다본 경치는 말할 수 없이 황홀했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종하 씨(44)는 “산에 다닌 지 10여 년 됐지만 바위를 탄 것은 처음이다. 처음엔 좀 주뼛거렸지만 갈수록 흠뻑 빠졌다. 짜릿했다. 수상스키를 처음 탈 때와 똑같은 기분이었다. 올봄 마라톤을 시작해 최근 풀코스를 3시간37분의 기록으로 완주했는데 이젠 암벽 타기에 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태초에 길은 없었다. 누군가가 맨 처음 앞서가면, 그 발자취가 바로 길이 됐을 뿐이다. 알파인 등반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비로소 시작된다. 바위는 놀이동산이다. 사람들은 그 너른 등판에서 수많은 길을 냈다가 지우고, 지웠다가 다시 새 길을 내며 논다.

대학생 상지윤 씨(29)는 “암벽 타고 온 뒤 하루쯤 누워 있었다. 몸 여기저기 멍든 데도 있었다. 처음에는 좀 긴장이 됐었는데 한두 번 타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수영 20년, 태권도 5년의 경험도 도움이 됐다. 나도 뭔가 할 수 있구나 하는 성취감과 자신감이 가장 큰 소득이다”라며 뿌듯해 했다.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다가 조난당한 단독 등반자들의 배낭 속에선 니체의 책이 흔히 발견된다. 니체의 ‘초인사상’이 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것이다. 초인은 바로 ‘도전과 탐험정신’을 먹고 큰다.

슬로베니아의 다보 카르니차르는 2000년 10월 6일 에베레스트 꼭대기에 오른 뒤, 스키를 타고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왔다. 걸린 시간은 딱 5시간. 하지만 그가 내려온 눈밭 길은 순식간에 지워졌다. 인간은 끊임없이 새 길을 내지만, 그 길은 금세 사라진다. 사람 사는 것도 그렇다.

암벽 타기는 한순간에 ‘사각형의 수평세계’에서 ‘자유와 해방의 수직세계’로 두둥실 솟아오르는 것이다.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수평에너지를 단박에 수직 에너지로 바꾸며 떠오르는 것과 같다.

바위는 천년만년 가부좌를 틀고 묵언한다. 하지만 ‘침묵의 소리’로 말한다. 봄 햇살과 소곤소곤 대고, 여름 땡볕과 뜨거운 열애를 한다. 가을 햇볕과 인생을 이야기하고, 겨울 햇발에 온 몸을 내맡긴다. 바위꾼들은 바로 이 ‘암벽부처’들과 온몸으로 ‘말 트기-길 트기’를 하는 것이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 바윗길 난이도, 최저 5.4부터 최고 5.15까지 ▼

바윗길 난이도는 독일 호주 브라질 영국식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1950년대 말 미국에서 정립된 ‘요세미티 소수점 등급체계(YDS)’가 보편화됐다. 1∼4급은 하이킹이나 단순히 기어오르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 간혹 로프를 쓰기도 하지만, 잘 살펴보면 주변에 자연확보물이 있기 마련이다.

암벽등반은 5.0급부터 시작된다. 보통 5.4급 이하는 특별한 암벽등반 기술이 없어도 오를 수 있는 루트, 5.4∼5.7급은 대부분 초보자가 시작하는 곳으로 기본적인 기술을 요하는 루트, 5.8∼5.9급은 주말 등반가들이 쉽게 오를 수 있는 곳. 지속적인 훈련과 안전장치를 능숙하게 사용해야 오를 수 있는 루트다. 5.10급은 처음 등급을 만들 당시엔 최고난도 루트. 세계적인 암벽화 회사 ‘파이브 텐’이라는 브랜드도 여기서 나왔다. 매주 빼놓지 않고 등반에 전념해야 오를 있다.

하지만 5.10급보다 더 어려운 루트가 나타나자 5.10a, 5.10b, 5.10c, 5.10d급으로 표시했다. 이런 식으로 70년대엔 5.11abcd가, 80년대부터 5.12abcd, 5.13abcd, 5.14abcd의 난이도가 차례로 추가됐다. 현재 최고 등급은 5.15b. 5.11∼5.15급은 진정한 고수들이 갈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아무리 고수라고 부단한 연습을 하지 않으면 위험한 곳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타호 레이크에 있는 ‘그랜드 일류전’은 '5.13d'이고, 독일 프랑켄유리의 145도로 기울어져 있는 길이 12m의 오버행 암벽 ‘액션 다이렉트’는 5.14d의 고난도 등급이다. 국내 암벽은 5.14급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람에 따라 그 평가가 조금씩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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