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암살자들, 그들은 왜 미국 대통령을 쏘았나

  • 입력 2009년 10월 8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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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암살한 존 부스 이후 역대 미국 대통령 암살자와 암살 미수범들을 무대 위에 불러낸 뮤지컬 ‘어쌔신’. 왼쪽부터 김대명 강태을 최병광 한지상 씨. 사진 제공 뮤지컬해븐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암살한 존 부스 이후 역대 미국 대통령 암살자와 암살 미수범들을 무대 위에 불러낸 뮤지컬 ‘어쌔신’. 왼쪽부터 김대명 강태을 최병광 한지상 씨. 사진 제공 뮤지컬해븐
■ 뮤지컬 ‘어쌔신’ 내달 8일까지

케네디-링컨 암살범 등 줄지어 항변
‘실험적 연출’ 유명한 손드하임 작품
어두운 무대… 춤없이 노래-연기만

‘삼류인생’들이 다 모였다. 짝사랑하는 여배우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려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책을 홍보하려고, 자신을 무시하는 친구들에게 존재를 알리려고, 직장에서 잘린 분풀이로, 그들은 총을 들었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을 겨눴다.

“이 극적인 한 장면을 위해 내 삶을 포기했어, 이해할 수 있어?”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암살하고 자살한 존 부스의 대사가 대변하듯, 뮤지컬 ‘어쌔신’은 암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외치는 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1865년 부스부터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리 하비 오즈월드,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죽이려 한 존 힝클리…. 성패를 떠나 대통령 암살을 실행에 옮긴이들이 시공간을 넘나든다.

이 뮤지컬은 실험적인 무대로 널리 알려진 스티븐 손드하임(79)의 작품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결이 다르다. 벽 하나 덩그러니 세운 단출한 무대에 뚜렷한 주인공도 없이 9명의 등장인물을 나란히 배치했다. 암살이라는 소재도 뮤지컬과 결부시키기 쉽지 않지만, 옴니버스 형식으로 에피소드를 배열했고 춤 없이 연기에 방점을 찍어 연극 같은 뮤지컬을 만들어냈다. 휴식시간 없이 110분간 이어지는 무대는 어두운 색조가 주를 이룬다.

익숙하지 않은 미국 근·현대사가 배경인데도 캐릭터를 몸에 맞춰 소화해낸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관객의 시선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부스 역의 강태을, 닉슨 대통령의 암살을 시도한 새뮤얼 비크 역의 한지상, 오즈월드 겸 해설자 발라디어 역의 최재웅,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암살을 시도한 주세페 장가라 역의 이창용 씨가 탄탄한 연기와 노래를 과시한다.

과거와 미래에서 온 살인자들이 오즈월드를 찾아가 총을 들라고 부추기는 장면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살인자, 정신병자, 미친놈이라 손가락질 받는 이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속내를 오즈월드에게 투사한다. “넌 평생 뭔가 중요한 것의 일부이고 싶어 했지? 자, 드디어 그 소원이 이뤄지는 거야!”(부스) “모국에 의해 추방당한 사람들처럼.”(비크)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절망 속을 떠다니고….”(힝클리)

2005년 초연 때는 600석의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무대와 10인조 오케스트라였지만 이번에는 230석 소극장 신촌 더 스테이지와 2대의 피아노로 규모를 줄였다. 피아노가 빚어내는 두 줄기의 선율이 화려한 화음 없이 단선율로 승부하는 손드하임 뮤지컬의 특징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부스의 발라드(The Ballad of Booth)’ ‘촐고츠의 발라드(The Ballad of Czolgosz)’ 같은 노래의 가사는 랩처럼 빠르지만 또렷하게 들렸다.

이 작품은 1990년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돼 73회 공연이 전회 매진됐다. 2001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려 했으나 9·11테러로 인해 대통령 암살이라는 주제가 논란을 빚자 손드하임이 포기했다. 당시 그는 성명에서 “‘어쌔신’은 미국인이 겪은 경험의 다양한 측면을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쇼”라고 말했다. 2004년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토니상 베스트 리바이벌 뮤지컬상 등 5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9월 26일 개막한 이래 2100여 명(객석 점유율 78%)이 다녀갔다. 11월 8일까지, 전석 5만 원. 1588-5212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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