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6단 “이젠 한방보다 여러 수가 보여요”

  • 입력 2009년 9월 3일 02시 56분


김지석 6단은 최근 고민이 뭐냐는 질문에 “성적이 너무 좋아 오히려 불안하다. 이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어영부영하다가 추락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서정보 기자
김지석 6단은 최근 고민이 뭐냐는 질문에 “성적이 너무 좋아 오히려 불안하다. 이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어영부영하다가 추락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서정보 기자
■ 드디어 날개 활짝 편 ‘잊혀졌던 신동’ 김지석 6단

장외(입단 전)에서 그는 우량주로 꼽혔다. 5세 때 이미 바둑 신동 소리를 들었다. 조훈현 9단도 그의 기재에 반해 이창호 9단에 이어 두 번째 내제자(집에서 숙식을 제공하며 가르치는 제자)로 받아들이는 것까지 고려했다. 다른 천재들과 마찬가지로 11, 12세 정도면 입단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의 주가는 옆걸음을 쳤고 14세 때야 비로소 상장(입단)됐다. 입단 후에도 내재 가치는 뛰어난데 실적(성적)은 주목할 만한 것이 없었다. 사람들이 ‘소외주’로 분류하며 관심을 두지 않았다.

5세 때 신동 소리 들었지만 방황 거쳐 14세 늦깎이 입단
부진 털고 20세에 첫 타이틀 “성적 좋아진 이유? 글쎄요… 자신감이 붙은 것 같아요”

2009년. 김지석 6단(20)의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다. 그동안 소외주의 설움을 떨어내듯 시세(성적)를 분출했다. 지난달 그는 물가정보배 결승에서 이창호 9단을 2 대 0으로 누르고 생애 첫 타이틀을 획득했다. 국제대회인 농심신라면배 세계연승최강전 국내 예선도 거뜬히 통과해 한국대표가 됐다.

올해 그의 성적은 49승 9패. 다승 1위와 승률 1위(84%)다. 덤으로 14연승의 기록도 세웠다. 곱상한 외모에 성적도 좋아지자 ‘바둑계의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라는 별명도 붙었다.

“저도 왜 성적이 좋아졌는지 모르겠어요. 올해 초 어려운 바둑을 운 좋게 여러 번 역전시키며 자신감이 붙은 것 같아요. 운이 좋았던 거죠.”

운이라고 했지만 그의 바둑은 확실히 작년과 달리 ‘균형감각’이 좋아졌다는 게 기사들의 평이다. 천재형 기사들이 그렇듯 그도 그동안 전광석화 같은 수읽기와 뛰어난 감각에 의존했다. 그의 펀치에 제대로 한 방 맞으면 그대로 KO였다.

“그런데 저랑 비슷한 유형의 기사들과 둘 때 저도 굉장히 편하더라고요. 한 방은 무섭지만 그것만 조심하면 바둑이 쉽게 풀려요. 그래서 깨달았죠. 저도 상대에게 그렇게 여겨지겠다는….”

그가 인내의 묘리(妙理)를 깨달은 것일까. 수가 보이면 직선적으로 달려들던 그가 수의 효용가치를 차분히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엔 한 가지 길만 보였어요. 지금은 여러 길이 보여요. 아직도 강경한 수를 택할 때가 많지만 그것밖에 안 보여 두는 것과 여러 길 중에서 의미를 부여해 택하는 것은 다르죠.”

한국기원 연구생 시절 그는 바둑이 지겨웠다. 다섯 살부터 둬온 바둑에 흥미를 잃을 지경이었다. 입단하면서 그 병이 나았다.

“뭔가 바둑을 통해 계속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바른 길 대신 다른 길을 밟아도 괜찮을 것 같지만 결국은 좋지 않은 결과를 보이는 것 같은 거요. 직업으로든 취미로든 좋은 분야 같아요.”

스무 살 청년은 바둑 외에 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는 대뜸 ‘여행’이라고 말했다. 기원과 연구실, 집을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히말라야처럼 대자연이 숨쉬는 곳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세상은 넓을 텐데요…”라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대학 진학도 꿈꿨다. 다른 분야에 있는 또래들은 어떻게 사는지, 대학 생활은 어떤지 궁금해서였다.

“모 대학에 지원했다 떨어진 뒤 생각을 접었어요. 아무래도 바둑과 공부를 병행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하지만 40대가 되면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에 가고 싶어요.”

그에겐 동갑내기 강동윤 9단이 있다. 입단이 1년 빠르고 타이틀 획득은 2년을 앞섰다. 강 9단을 염두에 두고 “라이벌은 누구냐”고 물었다.

“라이벌이요? 저만 잘 두면 되죠.”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천재라도 5, 6년 내공 쌓아야 꽃피워”▼

입단 후 정상 오르기까지 이세돌 5년, 최철한 6년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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