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역 35년 여정… 그리스 비극 한글로 부활하다

  • 입력 2009년 5월 20일 02시 58분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 ‘3대 비극 작가’ 전집 펴내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중 아이스킬로스(?기원전 525∼기원전 456)는 비극의 창조자라 불리고 소포클레스(기원전 496∼기원전 406)는 비극의 완성자라 불립니다. 에우리피데스(?기원전 484∼?기원전 406)는 비극이 모티브로 삼은 그리스 신화를 의심하고 비틀었습니다.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가 심오한 자연과 신 앞에 초라한 인간을 묘사했다면 에우리피데스는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노학자의 집념 덕분에 한국 독자들도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의 작품을 모두 비교하며 읽을 수 있게 됐다. 지난해 10월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과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을 펴낸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70·사진)가 19일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전 2권·숲)을 펴냈다. 지금까지 번역한 작품은 아이스킬로스 7편, 소포클레스 7편, 에우리피데스 19편 등 33편에 이른다. 천 교수는 “그리스 비극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호소력 있게 표현하는 드라마의 원형이며 주인공의 대화 중 쓸모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천 교수의 완역은 35년의 여정이었다. 1970년대부터 세 작가의 작품을 번역 출간하기 시작해 끊임없이 고치고 다듬었다. 그사이 아리스토텔레스 호메로스 헤로도토스 플루타르코스 등 많은 그리스 작가의 원전들이 그의 손에서 번역됐다.

천 교수의 전공은 독문학으로 대학 재학 시절 그리스 작품에 빠졌다. “플라톤의 작품에서 포도주에 물을 타 마시며 사랑이 뭐고 정의가 뭔지, 여러 주제에 대해 거드름 피우지 않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발언할 기회를 주며 토론하는 장면이 가슴에 깊이 남았지요.”

그는 서울대 전임강사이던 1960년대 ‘동백림(동베를린)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3년간 옥고를 치른 뒤 본격적으로 그리스 원전 번역을 시작했다. 그는 “1980년대에는 번역에 신경을 쓰지 못하다가 1994년부터 다시 번역에 매달렸다”며 “정년퇴임 뒤 하려 했지만 더 미뤘다가는 죽기 전에 못하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천 교수는 요즘도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자택에서 번역을 하고 있다. 그는 “좀 지쳤다”고 말했으나 지금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번역하고 있다. 이 책은 이전에 다른 학자와 함께 번역한 적이 있으나 “너무 급하게 주석도 달지 못하고 교정도 보지 못한 채 펴낸 것이 마음에 걸려 다시 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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