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따라잡기]묵직한 우리 책은 누가 키우나요

  • 입력 2008년 3월 15일 02시 49분


최근 출판잡지 ‘기획회의’ 218호는 독특한 기획을 하나 했다. 잡지 속의 잡지를 창간한 것이다. 이름 하여 ‘번역출판.’ 현장감 있는 번역비평을 위한 새로운 발걸음이란다.

다른 글도 재밌었지만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의 글에 유독 눈길이 갔다. ‘번역 출판의 양적 성장과 그 함의.’ 이에 따르면 한국의 번역출판 비율은 1990년대 중반 15%에서 최근 30%대로 올라섰다. 지난해 4월 15일 뉴욕타임스 주말판 북리뷰에서 “한국은 체코와 함께 세계에서 번역서 발행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라고 꼬집었을 정도다. 한국만큼 번역서 발행 비율이 높은 나라는 체코(29%) 정도. 미국(2.6%)은 둘째 치고 중국(4%)이나 일본(8%)과도 엄청난 차이가 난다.

번역도서 의존도가 특히 심각한 분야는 철학이었다. 지난해 발간된 철학서 1282종 가운데 571종이 번역 도서였다. 44.5%로 2권 중 1권꼴로 번역서였던 셈. 철학에 이어 순수과학(31.6%) 아동(29.5%) 만화(29.3%) 문학(23.8%) 순이었다.

원산국 편중도 심해서 10권 중 7권은 일본과 미국 책 번역물이었다. 특히 일본 소설 번역 종수가 갈수록 늘어 1997년 106종에서 2000년 310종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지난해에는 780종을 기록했다.

번역출판 비중이야 높아질 수도 있다. 문제는 국내 독자들의 입맛 역시 번역서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점. 12일자 본보에 실렸던 ‘한중일 인터넷서점 베스트셀러 분석’을 보자. 20위까지 번역서가 모두 11권, 55%나 됐다. 중국이 5권, 일본이 2권밖에 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좋은 저자들을 가꾸지 못한 건 출판계가 질책 받을 문제다. 국내 작가를 키우는 건 뒷전이고 해외 대형물 붙잡기에 혈안이 된 풍토도 아쉽다. 해외 인기 서적을 사들이는 데 몇 억 원씩 쓰면서 국내 저자나 번역가에겐 인색한 대형 출판사들도 썩 보기 좋지는 않다.

하지만 국내 베스트셀러 목록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자. 온통 자기계발서 아니면 돈 버는 법만 가르치는 책이다. 출판사가 그런 책만 찍었다지만 독자들도 그런 책만 봤단 얘기다. 일본 과학자의 진화생물학 책이 베스트셀러 5위를 차지하는 일본, 자국 역사책이 6권이나 20위 안에 들어있는 중국에 괜한 질투심이 나는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물론 번역서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다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번역서에서 새로운 변화를 발견하고 싶다. 돈 버는 법, 자기계발에 관한 책이 아니라 좀 더 오래 가고 깊이 있는 번역서 말이다. 일본에서 18위에 오른 ‘불편한 진실’(앨 고어)이나 중국에서 20위에 오른 ‘망고 스트리트’(산드라 시스네로스) 같은 번역서는 언제쯤 우리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를 수 있을까. 그때가 그리 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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