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위 약해 ER도 안 봤는데… ”

  • 입력 2007년 9월 1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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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의 그레이역 폼피오 e메일 인터뷰

왕년의 유행가 ‘그녀는 예뻤다’에 빗댄다면 그녀는 ‘그레이(Gray)’했다.

인기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원제 Grey’s Anatomy)’의 주인공 메러디스 그레이 역을 맡은 엘런 폼피오(38·사진)에게서 받은 느낌이다. 그녀의 인터뷰 응답에서 나오는 차분하면서도 건조한 느낌 때문일까. 그녀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특정 예를 들기보다 큰 틀에서 자기 생각을 담담하게 펼쳐냈다.

‘그레이 아나토미’는 시애틀 그레이스병원을 배경으로 젊은 인턴, 레지던트들의 열정과 고뇌, 사랑을 담은 메디컬 드라마. 제목 ‘그레이 아나토미’는 실제 의대 본과에서 사용하는 해부학 교과서 ‘Gray’s Anatomy’에서 ‘a’를 ‘e’로 바꾼 것이다. 주인공의 이름(Grey)이면서 인생의 가치는 흑백처럼 명확하게 나뉘기보다 회색 같은 모호함 속에 있다는 철학적 암시다.

16일(현지 시간) 로스앤젤레스 슈라인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제59회 에미상’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국내에서는 케이블방송 채널 CGV에서 시즌3(매주 수 목 오후 8시 30분)이 방영 중. 시상식을 앞두고 e메일로 그녀를 만났다.

―‘그레이 아나토미’ 열풍의 원인은….

“뛰어난 의사지만 우유부단한 데릭 셰퍼드(패트릭 뎀프시), 매사 적극적이면서도 때론 시니컬한 크리스티나 양(샌드라 오), 편안한 친구 조지 오말리(T R 나이트)…. 드라마에 정말 ‘다른’ 캐릭터가 많이 나오다 보니 시청자들이 그중 한 명에게 일체감을 느끼고 공감하는 것 같아요.”

그녀는 2002년 더스틴 호프먼이 출연한 ‘문라이트 마일’로 스크린에 데뷔한 후 ‘데어데블’, ‘캐치 미 이프 유 캔’ 등에 출연했다.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연기를 인정받아 2007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어떻게 메러디스 역을 맡게 됐나.

“첩보 드라마 오디션을 봤는데 그만 떨어졌어요. 낙담이 컸는데 마침 방송사 측에서 제가 새로 준비 중인 메디컬 드라마에 더 어울린다며 ‘그레이 아나토미’ 대본을 주더군요. 비위가 약해서 ‘ER’(의학 드라마)조차 한 번 안 봤는데….”

극중 메러디스는 의술이 뛰어나지만 우유부단하고 상처를 잘 받는 인물로 묘사된다. 유부남 데릭 셰퍼드를 사랑해 주변을 맴돌 정도. 하지만 메러디스의 부족함은 드라마 캐릭터 중 가장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메러디스 속에는 모든 사람의 모습이 있어요. 주인공답지 않게 결점투성이죠. 하지만 완벽한 사람은 없고 세상 사람들은 단점을 안고 살잖아요. 시청자들이 메러디스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제가 연기하며 느낀 감정이에요. 드러내지 않으면서 마음의 상처를 보여 주는 연기가 쉽지 않습니다.”

―메러디스도 수의사 핀 댄드리지와 뇌수술 전문의 데릭 셰퍼드 사이에서 갈등한다. 당신이라면….

“제 성격은 메러디스와 많이 달라요. 실제 상황이라면 두 남자 중 누구와도 사귀지 않을 거예요.(웃음) 극중 두 사람은 이미 결혼한 사람이잖아요. 무엇보다 저는 실제로 약혼했잖아요. 동료로서는 패트릭 뎀프시하고 친하게 지냅니다.”

27일 미국 ABC방송에서 방영되는 시즌4에서는 메러디스의 배다른 동생 렉시 그레이가 등장하며 레지던트 시험에서 떨어진 조지는 다시 한 번 인턴 과정을 밟기 위해 메러디스 밑으로 들어온다.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은….

“시즌3에서 메러디스가 물에 빠지는데 열심히 살려고 하지 않는 장면이 있어요. 삶의 무게에 압도당해서 순간적으로 삶을 포기한 거죠. 거의 죽은 상태가 되는 연기는 참 어렵더군요. 찬물에 빠져 얼어버리자 가슴을 사정없이 치며 소생시키는 장면도 육체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에피소드마다 당신의 목소리로 나오는 잔잔한 내레이션이 깊은 여운을 주는데….

“내레이션은 작품이 매회 주려는 메시지입니다. 저는 낭독하면서 무엇보다 그 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전달하는 데 힘을 기울여요. 모든 내레이션은 각각의 방식으로 저에게도 감동을 줍니다. 한국 드라마는 아직 못 봐 아쉽지만 그레이 아나토미가 한국에도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서 정말 행복합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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