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폭력…멜 깁슨이 메가폰 잡은‘아포칼립토’ 오늘 개봉

  • 입력 2007년 2월 1일 02시 59분


이만큼 잔혹한 영화도 드물 것 같다. 하지만 건물을 통째로 폭파하고 최첨단 차량 추격전이 있는 블록버스터도 많은데 거의 맨몸뚱이에 원시적인 무기를 쓰는 이 영화에서 이렇게 피 말리는 긴박감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매력적이고 동시에 위험한 이 영화는 배우 출신 멜 깁슨 감독이 마야문명을 배경으로 만든 서사 액션 어드벤처 ‘아포칼립토’다.

잔인한 침략자들이 젊은 전사 ‘표범발’(루디 영블러드)의 마을을 습격하자 표범발은 아내와 아들을 빈 우물 속에 숨긴 채 포로로 끌려간다. 제물이 될 위기를 넘기고 겨우 탈출해 가족을 찾아가는 그를 적들은 뒤쫓고 밀림에서 목숨을 건 추격전이 펼쳐진다.

○ 마야어 대사 등 사라진 문명 완벽 재현

침략자들은 아들 앞에서 아버지를 처참하게 죽이고, 집단 제의에서 산 사람의 심장을 꺼내 신에게 바치고, 목을 자른다. 눈 뜨고 보기 힘들다. 과도한 폭력성 때문에 안 그래도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미운털이 박힌 감독에게는 비난이 쏟아졌다. 뉴욕타임스는 “야만성이 너무 극단적이어서 가끔은 공포영화를 넘어 그로테스크한 코미디 같다”고 비꼬았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뒀다. 마야문명은 인간이 생존하기 힘든 열대밀림에 도시를 세웠으며 천문 역법 수학이 발달했지만 신에게 남자의 심장을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멕시코에서 고대 마야 역사를 전공한 경희대 스페인어학과 송영복 교수는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스페인이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정복의 논리’로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마야보다는 14∼16세기 멕시코 지역의 아스테카 문명에 대량 살상이 더 많았으며 제물들이 수 km씩 줄을 서서 죽음을 기다렸다는 기록도 있지만 역시 과장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증을 거쳐 마야를 완벽하게 재현하고 100% 마야어 대사에 일부러 무명의 배우들을 캐스팅했다는 깁슨 감독의 철저함은 의심을 살 만도 하다.

○ 서양중심 제국주의 미화 비판도

왜 그토록 폭력에만 집착할까. 깁슨 감독은 “당시의 폭력이 되풀이된다는 경고”라고 설명했다. ‘위대한 문명은 외세에 정복당하기 전 내부로부터 붕괴된다’라는 미국 사학자 윌 듀랜트의 말로 시작하는 이 영화가 ‘마야문명은 제국주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멸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건 사실이다. 더구나 마지막에 표범발은 십자가를 앞세운 스페인 함대를 목격한다. 서구인들이 야만의 제국을 끝내는 ‘아포칼립토’(그리스어로 ‘새로운 시작’)를 위해 왔다는 시각이라며 제국주의 미화로 보는 지적도 많다.

그러나 평론가 황진미 씨는 “이런 시각은 야만과 문명의 이분법이며 영화는 다가오는 서양 문명의 더 큰 폭력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가 ‘두려움’이고 구출된 아내가 “저들(스페인 사람)에게 가야 하냐?”고 묻자 표범발이 “우린 밀림으로 간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 의견도 설득력이 있다.

논란을 떠나 오락 영화로서만 평가하자면, 잘 만든 액션 영화다. 날아오는 화살을 피해 옥수수 밭을 가르면 시체 밭이 나오고, 나무 위에 몸을 숨기면 맹수가 쳐다보고, 목숨 걸고 폭포에서 뛰어내리면 또 늪에 빠지는 숨 막히는 도주는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만드는 장르적 쾌감을 준다.

깁슨 감독은 아주 단순한 줄거리를 풀어 가면서 고도의 집중력으로 이야기의 긴장감을 유지한다. 워싱턴포스트의 지적대로 그는 ‘깊은 사색가(thinker)는 아닐지라도 대단한 이야기꾼(storyteller)’이다. 1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 가.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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