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나이 팝스오케스트라 “무대 설 때는 우리도 프로”

  • 입력 2006년 10월 2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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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나이 팝스 윈드오케스트라 단원들이 24일 인천 부평구 십정동 린나이코리아 공장 연습실에서 정기연주회를 앞두고 합주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린나이코리아
린나이 팝스 윈드오케스트라 단원들이 24일 인천 부평구 십정동 린나이코리아 공장 연습실에서 정기연주회를 앞두고 합주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린나이코리아

린나이코리아 인천 공장 가스레인지 제품검사실에서 일하는 강완식(43) 씨. 오후 6시 하루 일과를 마친 강 씨는 흰 작업복을 벗고 검지봉 대신 플루트를 손에 들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작업장에서 사용하는 에어드라이버를 내려놓은 뒤 호른, 트럼펫, 클라리넷 등을 각자 챙겨 들고 공장 강당 한편에 마련된 연습실에 모였다.

이들은 국내 유일의 민간기업 관악 합주단인 ‘린나이 팝스 윈드오케스트라’ 단원.

올해로 창단 20주년을 맞은 이 합주단은 클래식 애호가인 강성모 린나이코리아 회장이 산업현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에게 ‘음악의 향기’를 느끼게 하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매출액 3000억 원의 회사이지만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데 연 2억 원을 쓰고 있다. 단원들의 연습시간에 대해선 특별수당까지 준다.

지휘자를 포함해 단원은 45명. 일부 사무직 직원 10명을 뺀 나머지 단원은 모두 같은 조립 부문에서 일하는 생산직 근로자다. 공연 때마다 자리를 비우기 때문에 회사에서 단원을 같은 부서에서 일하도록 배려했다.

단원의 절반 이상이 음대에서 악기를 전공했다. 전문 합주단이 많지 않은 현실에서 이들은 ‘연주활동’과 ‘안정적인 수입’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생산직 근무를 감수하고 입사했다. 하루 종일 선 채로 일하다가 저녁에는 연주 연습을 병행하는 ‘이중생활’이 쉽지는 않지만 이들은 “연주를 맘껏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입을 모은다.

모 지방대 음악교육과를 중퇴한 강완식 씨는 “친구 대부분이 음악 교사이지만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면서 “연주자로 꾸준히 활동하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평범한 근로자’인 이들의 음악은 ‘평범한 사람들’을 향해 있다. 월평균 2, 3회에 이르는 연주회는 지역 주민이나 청소년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교도소나 병원도 자주 찾는다. 입장료는 없다.

연주 내용도 팝, 재즈, 영화음악 등 대중적인 곡 위주다. 때문에 이들의 연주회는 매번 관객이 몰린다. 지난해 정기연주회에는 400여 명이 공연장에 왔다가 좌석을 못 구해 돌아갔고 올해 공연의 예약자도 수용 인원보다 600명을 초과했다.

이들의 기량은 수준급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1995년에는 ‘광복 50주년 기념 세계를 빛낸 한국 음악인 대향연’에 초대된 바 있고 대한민국 관악제와 전국관악경연대회에도 꾸준히 초청받고 있다.

유상기 악장은 “아무리 좋은 곡이라도 관객이 재미를 못 느끼면 죽은 음악”이라며 “그저 음악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인 만큼 관객도 우리의 음악으로 즐거울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올해 린나이 팝스 윈드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는 31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인천=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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