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리의 라디오스타들은 어디에?

  • 입력 2006년 10월 20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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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의 가수왕이었던 최곤(박중훈)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라디오 스타'. 18년이 지난 지금 그가 노래하는 곳은 미사리(경기 하남시)의 작은 카페다. 영화에서는 그를 보며 "학창시절 때 저 오빠 왕 팬이었는데"라고 말하는 중년 관객들이 나온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7080 문화 밸리'로 알려진 미사리 카페촌은 더 이상 1970~80년대 가수들의 무대가 아니다. 요즘 미사리 입구에 들어서면 리아, 강수지, '디바' 등 1990년대 가수들이 출연한다는 안내 간판이 즐비하다. 최근 카페 '아테네'에 들렀을 때 5인조 무명 아이돌 그룹이 'SG워너비'의 히트곡을 부르고 있었다. 영화 '라디오 스타'의 촬영지이자 가수 윤시내가 운영하는 카페 '열애'도 통기타 선율 대신 핫팬츠 차림의 20대 여성 4명이 춤을 추고 있었다.

'나이트클럽' 같은 무대가 끝나자 다른 곳에서 공연을 마치고 온 윤시내가 등장했다. 1980년대 '열애' '공부합시다' 'DJ에게' 등 히트곡을 남긴 그녀는 7년 전 미사리에 정착했다.

"예전만 해도 통기타 가수에 소박한 분위기였죠. 그런데 지금은 젊은 손님들 위주로 댄스가수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가요계가 너무 빨리 변해 어제 TV에서 본 신세대 가수들이 미사리에서 공연하기도 해요. 7080 가수들도 이젠 많이 사라졌어요."

인터뷰 도중 대여섯명의 아줌마 팬들이 사인을 요청했다. 윤시내를 보기 위해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김연순(41) 씨는 "이젠 무조건 미사리로 가기보다 의정부나 인천 등 특정 가수가 공연하는 카페를 찾아 간다"고 말했다.

윤시내에게 "TV에 왜 출연하지 않느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 말이 쏟아져 나왔다.

"아무리 신곡을 발표해도 예전 히트곡만 부르게 해요. 7080 가수들은 늘 '추억의 가수' 취급을 당하죠. 내가 설 무대가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서 한 동안 TV도 끊고 음악도 안 들었어요. 그래도 미사리 무대에 선 이후로는 마음이 참 편했는데…"

1996년 미사리 카페촌이 본격 형성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7080 가수들은 미사리를 떠나 인천 분당 의정부 부산 대구 등에서 '전국구' 활동을 벌이고 있다. 7080 문화 대신 'TV 스타'를 찾는 젊은 팬들이 늘어나면서 점차 1990년대 가수들이 미사리를 장악하고 있다.

5년 전 미사리를 떠난 가수 임지훈은 최근 경기 안산시의 한 카페에서 일주일에 세 번 공연을 한다. 그는 "미사리에는 추억만 있을 뿐 마치 고여 있는 물 같다"며 "트로트, 댄스 가수들이 진출한 뒤 '미사리=7080' 공식도 깨졌다"고 말했다.

현재 미사리에서 활동하는 7080 가수들 중 인순이 남진 박강성 심수봉 등이 A급 가수들. 이들의 몸값은 한달 출연에 1억원 정도다. 이런 가수들을 유치하다보니 커피 한 잔에 3만원을 받는 카페도 있지만 운영난에 허덕이는 곳들이 많다. 한 카페의 사장은 "4~5년 전 하루 300여만 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최근에는 하루 21만원 밖에 못 번다"고 말했다.

'미사리의 서태지'로 불리며 미사리에서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은 가수 박강성은 "스스로 '옛날 가수'라 생각지 말고 가창력, 몸매, 심지어 개인기 등 끊임없이 적극적으로 변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8년 째 미사리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 가수 이규석은 "한 때 50여개의 카페가 즐비했던 미사리 촌이 큰 카페를 중심으로 합병, 현재 10여개 곳만 불을 밝히고 있다"며 "설자리를 잃은 7080 가수들은 살기 위해 전국을 돌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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