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이영식 ‘노을·景’

  • 입력 2006년 9월 2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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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景 (박수근) - 이영식

늦가을 해 질 무렵

노인 셋 방앗간 담벼락 앞에 붙어 벽화를 그리고 있다

어쩌다 어르신네들이 함께 오줌발을 세우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알곡 익히던 땡볕의 시간 건너와

의지가지없는 석양빛 등에 진 모습들 따뜻하다

회백색 담장에 그려지는 그림이 영 시원치 않았던지

옆 그림자 힐끔거리던 한 노인 다시금 붓대를 고초세운다

어떤 彩色도 녹슨 쇳조각 같은 저녁

지나던 개가 곁에 붙어 다리 치켜드는 것을 보고

누군가 싱겁게 한마디 던지는데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다, 멀어…*

* 박수근 화백의 마지막 말

- 시집 '희망온도'(천년의시작)

저 낡은 방앗간으로 무거운 볏짐도 목화솜처럼 져 나르던 시절 있었으리라. ‘장군짐이 곧 쌀짐이여!’ 마른 벽에 함부로 난을 치는 저 무채색의 물감도 아까워, 마실 갔다가도 제 집에 돌아와 오줌장군에 붓던 시절 있었으리라. ‘알곡 익히던 땡볕의 시간’을 ‘건너온’ 노인들, 아이처럼 오줌발 붓질하는 모습이 노을처럼 쓸쓸하고 노을처럼 따뜻하다. 마지막 박수근 화백의 말씀엔 좀 어깃장을 놓아야겠다. 천당에도 저런 풍경쯤은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르신들, 걱정 마시고 뜨거운 벽화 시원하게들 그리셔요.’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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