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전성호, “산책길에 있었던 일”

  • 입력 2006년 9월 1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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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리나무풍뎅이 한 마리

나뭇가지에서 삭정이를 맞아 압사했다

아무도 소리치는 사람 없다

마을 불빛 하나둘 들어차는

고갯마루 숲을 막 떠난 비바람 보이지 않고

축축한 지표 위에 달빛만 다가와

풍뎅이 사늘한 몸뚱이를 어루만진다

깨진 등짝 속으로 어두워오는 적막

오리나무풍뎅이 간 곳을

나는 묵상하고

숲은 끝내 말이 없고

오리나무, 자신의 긴 그림자 곁에서

하늘 솟는 마을 불빛만 바라본다

바람 일어나는 것을 보니 풍장을 할 모양 이다

- 시집 ‘캄캄한 날개를 위하여’(창비) 중에서》

물론, 삭정이가 1cm만 빗겨 떨어졌더라도 나는 무사했을 것이다. 며칠 남은 생을 신나게 붕붕거리다가 어쩌면 아름다운 암컷 풍뎅이를 만나 윤기 나는 알을 슬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삭정이는 빗겨 가지 않았고, 나는 등딱지가 깨어진 채 차가운 달밤을 맞았다. 이도 나쁘지 않다. 우리 곤충들은 가장 사소한 사고에도 덧없이 죽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리쳐 우는 이 없으니 얼마나 고요하고 위엄 있는 장례인가. 달빛은 아름다운 수의, 나뭇잎은 훌륭한 봉분. 나는 이제 내 어깻죽지에 맴돌던 날갯소리만 데리고 바람에 스며 이제껏 가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으로 날아갈 것이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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